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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Slowalk

#아이덴티티 ④ Right Now 2: 슬로워크 진단 결과는 '보통 회사'

슬로워크는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과정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 Right Now 단계 중 외부 환경 분석인 '이러다 우리 망하는 거 아냐?'에 이어 조직의 현재 모습을 진단한 과정과 결과를 전하려고 합니다. 


①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② Until Now: 슬로워크 10년, 용하게 살아남았습니다. 

Right Now 1: 이러다 우리 망하는 거 아냐?

④ Right Now 2: 슬로워크 진단 결과는 '보통 회사'

⑤ Right Now 3: 그 회사가 알고 싶다. 

⑥ Right Now 4: 지금이 던킨도넛 먹을 때인가요?

⑦ From Now on 1: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 이렇습니다.

⑧ From Now on 2: 슬로워크 아이덴티티를 공개합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죠.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반대의 문구도 있습니다. 부지피부지기 백전필태(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 상대를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자신을 아는 것이 위태롭지 않기 위한 하나의 필수 요건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슬로워크가 전쟁터에서 전쟁하는 것도 아니고 적으로 여기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위태롭지 않기 위해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은 공감이 갑니다. 어떤 목표를 두고 경쟁이나 협력을 할 때, 먼저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현재의 모습에서 정확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슬로워크는 외부의 환경을 분석하는 작업과 함께 조직의 현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슬로워크 조직 진단의 관점


'우리의 모습을 어떤 관점으로 살펴봐야 할까?' 

슬로워크는 조직을 진단하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던졌습니다. 관점에 따라 조직을 진단하는 범위나 요소 그리고 활용하는 도구들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는 회사의 미션을 재정립하고 포괄적인 정체성을 큰 틀에서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우선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략, 조직구조, 조직역량과 같이 세부적인 진단은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조직 현황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1) 내부평판 관점

슬로워크가 착한 회사 또는 친환경적인 회사라는 외부의 평판과 인식은 평소에도 많이 접했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진행된 외부 이해관계자 설문을 통해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인 슬로워커들이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평가가 분명하게 공유된 적이 드물었고 새로운 방향을 수립할 때 중요한 고려요소로 다루어진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진단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내부평판 현황을 파악하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2) 지속가능성/사회적 영향 관점

이 역시 1) 번의 동기와 비슷합니다. '슬로워크가 대외적으로는 착하고 친환경적인 회사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조직 차원에서 그런 철학과 가치를 실천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러한 가치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금의 모습에서 어떤 요소들이 먼저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나올까?' 이제까지 이런 질문을 제대로 던지고 답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사회적 영향 관점에서 조직의 전반적인 현황을 파악해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관점에 기반을 두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1) 일하기 좋은 기업(GWP) 평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GWP 분야와 항목을 참고하여 진행했습니다.

2) 직원 행복지수 평가: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연구보고서 내용을 참고하여 진행했습니다.  

3) 지속가능성/CSR 진단: B impact assessment, SA8000, UNGC self assessment tool을 통합적으로 참고하여 자체 진행했습니다. 

4) 슬로워크 평판 진단: 자체적으로 설문을 구성하여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중 3) 번을 제외한 나머지들이 주로 구성원의 설문에 의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슬로워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정확하고 냉철하게 자기 생각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전에 각 진단의 목적과 의미를 구성원에게 공유하고, 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통해 구성원의 생각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준을 정한 것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5점 척도로 응답 방식을 구성하다 보니 두 개의 점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 때는 항상 보수적으로 즉, 더 낮은 점수에 응답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할 이슈들이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날 수 있을테니까요.  



조직 진단의 결과


슬로워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기적으로 모든 슬로워커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 과정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조직 진단 결과는 8월에 전 구성원이 모인 자리에서 공유되었었는데요. 그때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ITF(아이덴티티 프로젝트 태스크포스)에서 결과를 발표하면서 결과를 요약한 한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현재의 슬로워크는 그냥 '보통회사'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많은 구성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슬로워크는 보통회사와는 무언가 다른 회사라고 많은 구성원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냐고요? 관점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슬로워크가 조금 냉철하게 스스로를 보통회사로 진단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구성원들이 회사에서 느끼는 만족도와 행복감이 다른 회사들에 비해 높은지 모르겠다. 


먼저 슬로워크가 일하기 좋은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분석 결과 모든 슬로워커 중 절반을 조금 넘는 54% 정도만이 슬로워크는 훌륭한 직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5%가량은 일하기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답변을 했고, 30%는 그냥 보통 수준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긍정적인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사 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응답한 슬로워커는 절반에 못 미치는 43% 정도였습니다. 다수의 구성원이 슬로워크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배우는 것도 있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돼서 좋다고 했고 회사 내에서의 관계에 대한 만족감도 낮지는 않았지만, 슬로워크에서 정서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는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습니다. 


가장 심각하게 보였던 부분은 구성원들이 일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와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한 결과였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구성원이 일만이 아닌 복합적인 고민을 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슬로워크를 아는 외부의 사람 중에는 주로 회사를 칭찬하고 부러움을 표현해준 분들이 훨씬 많았는데, 내부의 슬로워커들 중에는 회사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구성원들도 상당수라는 점을 통계로 확인하고 나니 앞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노력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로워크를 다니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직접 받아보았는데요. 여기에서도 매우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같은 제도와 업무 환경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이 있고 또 누구는 좋아하는 모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내부평판에 대한 여러 가지 조사 결과를 보면서 느낀점은 '아, 다른 회사에 있는 불만이나 문제가 슬로워크에도 다 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회사를 정말 좋아하는 구성원들도 많지만요. 여하튼, 말 그대로 '보통회사'네요.


2) 지속가능성 측면의 현재 모습이 일반적인 회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슬로워크는 아이덴티티를 수립하기 전부터 지속가능성을 회사의 가치와 철학에 잘 녹여내고 싶은 바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조직의 현황을 진단할 때도 과연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슬로워크의 모습은 어떨지가 가장 궁금한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지속가능성 역량 진단은 CSO인 장수하늘소 발자국이 맡아서 일반적인 회사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진행을 해보았는데요. 결과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굵은 파란색 글씨가 매우 잘하고 있는 부분, 작은 크기의 파란색 글씨가 나름 잘하고 있는 부분, 작은 크기의 붉은색 글씨가 개선이 필요한 부분, 굵은 붉은색 글씨가 상당히 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지속가능성 진단 결과는 평소에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하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슬로워크는 구성원이 어떻게 하면 야근과 휴일근무를 많이 하지 않고 개인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 정말 깊이 고민하고 있는데요. 그와 별개로 회사가 운영되는 현실을 살펴보니 상황에 따라 상당히 격무에 시달리는 현실이 존재하고 이런 현실은 지속가능성 관점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이슈로 나타났습니다. 노동기본권 부분도 구성원 중 다수는 개인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슬로워크의 장점이라고 했지만, 지속가능성 진단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명확한 제도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언제든 후퇴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슬로워크의 전반적인 지속가능성 역량을 진단해보니, 역시 보통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진단은 냉철하게, 평가는 보수적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3) 그 외에도 일반적으로 어느 회사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점들이 적지 않았다. 


슬로워크 진단의 관점과 직접 연관성을 가진 1), 2) 번 이유 외에도 조직 진단 과정에서 발견된 내용은 더 있었습니다. 소셜임팩트 관점에서 슬로워크의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적합한 모델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슬로워크의 철학과 가치가 경영시스템으로 잘 구현되어 있는가? 이 또한 여력이 부족한 여느 회사들처럼 슬로워크가 지켜내고자 하는 가치와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간의 괴리가 포착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결과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슬로워크가 아직은 보통회사라는 현실 인식이 구성원에게도 어느 정도 수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직 진단 결과를 공유한 이후로 슬로워커들은 지금의 슬로워크를 보통회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혹시 슬로워커들에게 슬로워크가 좋은 회사라고 칭찬을 해주셨을 때 아래와 같이 겸연쩍은 반응이 나오더라도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전에는 칭찬을 들으면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아, 더 잘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조직 진단의 결과 좋은 요소들도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잘 못 하는 점들을 중심으로 슬로워크의 민낯을 파헤치고 드러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개인과 집단은 항상 자신에게 관대한 성향을 지니고 있기에 오히려 지금의 모습을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볼 때 미래의 이상을 위한 로드맵도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직 진단 결과가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일단 치부가 공개되면 외부에서 계속 주시할 것이기 때문에 안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설사 지금 현실적으로 개선이 어려운 문제이더라도 계속해서 고민을 안고 갈 수 있으니 언젠가는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조직 진단 결과를 보며 결론 내린 슬로워크의 현재 위치는 바로 다음 매트릭스의 중간에서 살짝 아래, 조직문화와 지속가능성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작은 저 지점이라는 것에 모든 구성원이 공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직 진단 결과가 기대보다 낮게 나왔다고 구성원들이 의기소침해진 것은 아닙니다. 조직 진단 활동과 결과, 그리고 개선을 위한 노력이 슬로워크의 미래를 위태롭지 않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그리고 아이덴티티 공개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