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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활동에 사적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도 될까요?

slowalk 2020. 6. 30. 15:47

21대 국회의원 300명 이메일 주소 전수조사 결과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재직 시절에 미국 정부의 이메일 계정 대신 id@clintonemail.com이라는 개인 이메일을 대부분의 업무에 사용했다는 것이 발각됐습니다. 업무에서 공사 구분을 전혀 하지 못한 이메일 스캔들로 인해 힐러리 클린턴은 지지율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공적 소통 수단으로서의 이메일 논란이 뜨거웠고, 이때 힐러리 클린턴을 비판했던 이방카 트럼프가 2018년에는 같은 이슈로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2020년 6월 27일에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노동운동 홍보 전문가였던 류호정 정의당을 혁신할까"를 읽다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류 의원실에는 노조 때 사용해 익숙한 ‘Dooray’라는 협업툴을 쓴다. 협업툴을 쓰면 특정 구성원이 잠시 부재해도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고 할 일과 한 일을 체크하며 서로의 진행 상황도 확인할 수 있다. 드라이브가 있어 자료를 저장하거나 찾기도 쉽다. 류 의원실에선 도메인을 만들어 이메일 체계를 통일하는 등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썼다.

협업툴 Dooray를 사용한다는 것보다, "도메인을 만들어 이메일 체계를 통일"했다는 데 눈길이 갔습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에게는 국회에서 id@assembly.go.kr(또는 id@na.go.kr, 서버는 둘 다 동일) 이메일 계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별도 도메인네임을 사용한다는 것은 국회에서 제공하는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id@assembly.go.kr로 받는 메일을 id@domain.name으로 실시간 포워딩할 수도 있어 확인해보니 국회 이메일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현황 페이지에 가서 몇몇 의원들의 이메일 주소를 찾아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300명 모두의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고 그것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합니다. (공공데이터포털에 국회의원 정보 API가 있으나, 최종 수정일이 2020년 2월 24일이고 이메일 주소는 기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2020년 6월 28일 기준 국회 홈페이지 '국회의원현황'에 기입된 데이터를 전부 수집해서 분석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기입하지 않은 의원이 꽤 많아서 놀랐습니다. 300명의 의원 중 176명(58.7%)만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머지 124명의 의원에게 이메일 주소가 없지는 않을 텐데, 이상합니다.

 

‘취미, 특기'는 적혀 있지만 ‘이메일 주소'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취미, 특기'란은 왜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국회의원 윤한홍 소개 페이지

이메일 주소가 기입된 176명 중 국회에서 제공하는 이메일 계정(id@assembly.go.kr, id@na.go.kr)을 사용하는 의원은 18명 뿐으로, 10.2% 수준입니다. 즉 나머지 158명은 사적인 이메일 주소를 공적인 의정활동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서비스 제공자별 비율

이메일 주소를 기입한 의원 중 40.9%가 국회 이메일 대신 네이버 메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Gmail(33.5%), 다음(13.1%) 순입니다. '기타'로는 신기하게도 엠팔(empal.com)을 사용하는 의원이 있었습니다(현재 네이트에서 운영 중). 그리고 자체 도메인네임을 사용하는 의원이 3명 있었습니다.

 

자체 도메인네임을 사용하는 의원 목록

홍익표, 이소영, 류호정 의원이 자체 도메인네임을 ESP에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홍익표, 이소영 의원은 선거운동을 위해 구입한 도메인네임에 연결한 것으로 보이며, 류호정 의원은 의정활동을 위해 최근에 도메인네임을 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임 시절에 'clintonemail.com'이라는 도메인네임을 자체 메일서버에 연결하고, 대부분의 업무 이메일을 이 주소를 통해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 블랙베리를 통해 이메일을 사용하기를 원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히 본인의 편의를 위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국무장관이었으므로 당연히 국가 기밀사항도 'clintonemail.com' 이메일로 주고받았습니다. 개인 이메일은 정부 이메일보다 보안이 허술하고, 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공직자의 투명성에도 큰 상처를 입힌 사건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은 독립된 헌법 기관이기 때문에 국회 이메일을 꼭 사용할 의무는 없고,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의 경우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동등하게 비교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회의원도 임기 만료 후에는 민간인입니다. 임기 동안에 본인 이메일 계정으로 소유하고 관리한 데이터는 임기가 종료되면 중요한 공공기록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률상 공공기록물 지정 여부와 관계 없이, 사적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면 추후에 관리할 방법이 없습니다. 

또 사칭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메일을 활용한 피싱 사건이 상당히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의원의 지메일 계정과 매우 유사한 계정을 만들어 해당 의원을 사칭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이메일 주소가 58.7%라도 공개 되어 있으니 다행이지만, 보좌진들의 이메일 주소는 파악조차 할 수 없습니다. "000 의원실 보좌진입니다"라는 말을 믿을 방법은 국회 이메일을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이런 문제를 안고도,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왜 사적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할까요? 혹시 국회에서 제공하는 이메일은 국회 외부에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국회 웹메일 로그인 화면

국회 웹메일에 접속해 봤습니다. 국회 외부에서도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행정전자서명 인증서'만 등록하면 접근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국회 웹메일 가이드'라는 문서를 읽어보니 '로그인 허용 국가'를 별도로 설정할 수 있는 것으로 봐서 국외 출장 중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크롬 브라우저, 파이어폭스 브라우저에서의 사용법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국회 웹메일 가이드 목차

당연히 예전부터 계속 사용하던 이메일이 쓰기 편할 것입니다. 평생 국회의원 할 것도 아니니 정치인으로서 향후 커리어를 위해 하나의 이메일 주소를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는 게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볼까요? 어떤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상사와 동료들에게 "저는 네이버메일이 편해서 좋아요. 앞으로 저에게는 회사 메일 말고 네이버메일로 보내주세요"라고 하는 게 가능할까요? "제가 이 회사 평생 다닐 게 아니니 저는 학생 때부터 쓰던 이메일 주소를 회사에서도 계속 쓸게요"라고 하는 상황이 상상이 가나요? 왜 직장인들은 당연하게 하는 공사 구분을 국회의원들은 무시하고 있을까요? 사실 공사 구분을 가장 철저하게 해야 하는 직종이 그들입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국회의원이 임기 동안에 본인 이메일 계정으로 소유하고 관리한 데이터는, 임기가 종료되면 공공기록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원실채용' 게시판

국회 '의원실채용' 게시판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각종 보좌진 채용 지원서를 받는 메일주소가 Gmail, 네이버메일 투성입니다. 지원자들의 개인정보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을지 심히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의원들, 보좌진들 모두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처음에 언급한 기사로 돌아가봅시다. 류호정 의원의 말입니다.

 

“카톡·텔레그램 등 메신저를 기반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 이슈를 한눈에 살펴보기 어렵고 자료보관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며 “담당 직원(활동가)이 떠나면 역사가 쌓이지 않고 다음 직원이 오면 구전하는 식이라 체계가 생기기 어렵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면 협업툴을 쓰자”고 말했다. 이어 “정의당엔 상근자가 아니라 생업하면서 활동하는 분들도 있어 메신저 기반보다는 정리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에는 동의하고 응원합니다. 하지만 이런 업무 이슈 트래킹과 아카이빙을 의원실 차원에서 하는 게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국회 차원에서 솔루션을 제공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소속 정당 차원에서라도 제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류호정 의원실만 Dooray를 사용하고 있는데, 류 의원이 21대를 끝으로 국회에서 떠난다면 그 계정과 그곳에 쌓인 데이터는 어떻게 될까요? 계정이 삭제되는 것도 문제지만 전직 의원이 계속 데이터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소속 정당 차원에서 관리한다면 의원이 국회를 떠나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고, 정당의 책임 하에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국회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절차는 매우 간단합니다. 재직자로 확인되고, 인증 절차를 거치면 바로 발급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21대 국회 초선 당선인 설명회(2020.5.20),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지난 5월 20일에 21대 국회 초선 당선인 연찬회와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보도를 보면 안내책자를 배부하고, 연봉과 의정활동 지원경비 등의 설명도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메일 계정 생성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의원들이 듣고 흘린 것일까요?

3명.

21대 초선 의원 중에서 국회 이메일을 기입한 의원의 숫자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 정정순 의원, 그리고 미래통합당 전봉민 의원만이 국회에서 제공하는 이메일 주소를 기입했습니다. 이들이 국회 이메일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국회 사무처에서 이메일 계정 안내를 한 것 같기는 합니다.

 

이메일 주소에 숫자가 포함된 비율

모두 120명, 이메일 주소를 기입한 의원 중 68.2%에 해당하는 의원의 이메일 주소에 숫자가 1개 이상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이메일 주소에 숫자는 안 넣는 게 좋습니다.

 

이메일 주소에 숫자를 안 넣는 게 좋은 이유


1. 나이, 생일 등 알리지 않아도 될 개인정보를 알리게 된다.
2. 주소를 소리내어 알려줄 때 실수하기 쉽다.
3. 정확한 주소를 기억하기 어려워서 이메일을 엉뚱한 사람에게 보내게 될 수 있다.
4. 프로페셔널하게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나이, 생일은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메일 주소에 넣을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수많은 의원들께서 국회 이메일 계정을 생성해야 할 것 같으니, 이참에 숫자는 제거하고 계정을 만드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당별 분포를 보겠습니다.

 

정당별 의원 이메일 주소 분포

국회 이메일 사용 비율이 가장 높은 정당은 미래통합당입니다(6.8%). 사실 가장 높다고 하기에 부끄러운 수치입니다. 그 다음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5.7%).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의원 중에는 국회 이메일을 사용하는 의원이 한 명도 없거나 알지 못합니다.

 

네이버 메일은 미래통합당(31.1%)에서 가장 많이 쓰고, 그 다음은 더불어민주당(19.9%)입니다. Gmail은 기본소득당(100%), 국민의당(66.7%), 열린민주당(66.7%), 정의당(33.3%), 더불어민주당(25.6%), 미래통합당(5.8%) 순입니다.

 

그런데 이조차 공개하지 않은 의원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메일 주소를 국회 홈페이지에 기입하지 않은 의원들 말입니다. 국민과의 기본적인 소통 수단이 이메일인데, 이런 소통 자체를 거부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전환은 100%가 이메일 주소를 기입하지 않았고, 미래통합당(48.5%), 더불어민주당(38.6%) 순입니다. 국회 홈페이지에 이메일 주소를 공개하지 않은 의원 명단을 이 게시글의 가장 하단에 첨부했습니다.

 

혹시 국회의원들이 국회 이메일을 사용하면 안 되는 불가결한 사유가 있는데 제가 모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pengdo@slowalk.co.kr 앞으로 사정을 설명해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국회의장 박병석 의원도 꼭 국회 이메일을 사용해주세요. 너무 당당하게 Gmail을 적어놓은 것 아닌가요?, 이미지 출처: 국회의장 박병석 소개 페이지

마지막으로 한국의 국회의장이 다른 나라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개인용 이메일 서비스(Gmail)를 사용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덧붙입니다. 미국 연방하원 의장이 업무에 네이버 이메일을 쓴다면 당연히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원문: 슬로워크CEO 펭도(조성도)의 미디엄, 의정활동에 사적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도 될까요?

 

의정활동에 사적인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도 될까요?

21대 국회의원 300명 전수조사 결과

medi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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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슬로워크 CEO 펭도(조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