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숭이의 해 2016년이 밝았습니다.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 포스팅도 이제 마지막 단계인 From Now on에 관한 글 두 개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오늘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에 관한 글이 올라가고 내일 슬로워크의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공개되면, 2016년 1월부터는 진정성을 가지고 실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이덴티티 수립 작업은 이전 단계의 활동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Until Now(과거 10년 정리)와 Right Now(조직 내·외부 현황 분석)에서처럼 조사와 진단을 통해 '찾는' 일이 아니라, 계속된 아이디어의 공유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앞 단계에서의 분석 결과들을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성을 큰 틀에서 가늠해 볼 수는 있었지만, 실행 가능한 조직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은 또 다른 백지에서 시작해 고민하고 결정하면서 스스로 최적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사와 진단 과정에서는 분석적 사고와 통찰력을 필요로 했다면, 실제 아이덴티티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확산과 수렴을 반복하는 통합적 사고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덴티티 수립의 전체 흐름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은 본래 마스터플랜 상에서 계획했던 4주보다 훨씬 늘어나 12주 가까이 작업이 진행되었는데요. 그만큼 소통이 필요하고 더 민감하게 논의되어야 할 이슈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다행히, 이번 기회에 그간 덮어두고 지나쳤던 이슈들을 끄집어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보자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프로젝트 기한을 맞추기보다는 내용을 충분히 고민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었습니다. 


아이덴티티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진행했던 주요한 활동은 아래와 같습니다. 순서대로 절차마다 간단한 소개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0. 아이덴티티 수립 원칙 마련


슬로워크는 아이덴티티 수립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아이덴티티 수립 방향에 관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아이덴티티에 관한 논의가 제멋대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ITF(아이덴티티 태스크포스)와 IC(아이덴티티 위원회)에서 결정된 아이덴티티 수립 원칙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자의적인 아이디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조사와 진단 결과에 근거하여 아이덴티티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

- 불필요한 요소나 내용은 배제하고 슬로워크에 꼭 필요한 아이덴티티 요소들만 최소한으로 수립한다. 

- 현재의 모습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회적 필요와 트렌드를 토대로 원점에서 구상한다. 

- 향후 10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수립하는 내용은 크고, 담대하고, 도전적(BHAG)으로 만든다.  

- 그러나 표현은 과장이나 수사적인 표현을 삼가고, 최대한 담백하고 질리지 않게 한다. 

- 현재의 모습과 미래 비전 간 괴리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로드맵에 신경 쓴다. 

- 아이덴티티는 원칙, 기준 등 실행과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세부 가이드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연계성을 고려한다. 


이렇게 시작 시점에 원칙들을 미리 세우고 진행해보니, 확실히 아이덴티티 논의가 자의적으로 흐르지 않고 전반적인 아이덴티티 수립 작업이 더 효율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1. 아이덴티티 기본 방향 도출


아이덴티티 수립 작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덴티티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는 무엇이든 제한 없이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가 이전 단계의 조사 및 진단 결과와 연계되는 작업도 꼭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조사 결과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그 결과들이 보여주는 통찰 있는 시사점들은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전 단계의 모든 결과를 종합하여 아이덴티티 수립의 기본 방향으로 고려해야 할 이슈들을 선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수십 개의 이슈가 섞여 있던 이슈 풀(pool)에서 35개의 고려 대상 이슈들을 정하고, 이 이슈들을 중요도에 따라 구분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아래와 같은 템플릿을 만들어 활용하였습니다.  



분석을 마치고 나니 14개의 매우 중요한 이슈(H), 17개의 중요한 이슈(M), 그리고 4개의 중요도 낮은 이슈(L)가 도출되었습니다. 이 중 H와 M에 속하는 이슈들이 이후 아이덴티티 수립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2. 비즈니스 모델 재정립


조직 진단 때 문제점 중 하나로 나온 것이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덴티티에 논의 초반에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가졌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논의는 일반적인 비즈니스모델캔버스(Business Model Canvas)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는데,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보고 서로의 생각을 모으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1) 슬로워크의 고객은 누구인가? 그중에서 타겟 고객은 누구인가?

2) 고객의 근본 니즈는 무엇인가?

3)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4) 고객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슬로워크가 갖춰야 할 역량과 모습은 무엇인가?


질문은 크게 위의 네 가지를 중심으로 던졌지만,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다양한 생각의 갈래들이 나왔습니다. 고객의 범주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해서는 안 될 작업의 기준들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고, 슬로워크가 앞으로 세계적인 전문성을 확보해야 할 영역은 어떤 분야일지에 대해서도 생각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사실 슬로워크는 기존 사업 모델이 돌아가고 있고, 곧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도 아니므로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수립해야 할 긴박한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10년의 아이덴티티를 수립하기에 앞서, 소셜 임팩트 관점에서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해볼 필요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슬로워크가 조직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사업을 해오던 방식보다 좀 더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3. 아이덴티티 개별 요소 수립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에 중요하지 않은 작업이 없겠지만, 가장 많은 비중의 자원과 시간 그리고 역량을 쏟은 부분은 역시 슬로워크의 아이덴티티를 실제로 구상하고 수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조직의 미션과 비전 등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일성 있게 만들어 내는 일은 어느 조직에도 쉽지 않지만, 경제적 성장 외에도 여러 가치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한 슬로워크에게는 더욱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전체계 또는 전략체계의 구성 요소들을 설명할 때는 아래와 같은 피라미드로 설명을 많이 하는데요. 슬로워크도 아래 피라미드의 요소들을 참고했습니다. 다만, 아이덴티티 수립 원칙 중 하나가 "꼭 필요한 요소만 선정해서 만들자"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비전 체계의 모든 요소들을 그대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아이덴티티와 그 요소들이 구성원과 핵심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어야 할지를 고려하여, 슬로워크 입장에서 아이덴티티 각 요소의 필요성 및 범주를 따졌습니다. 그중에서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의 범위를 벗어나는 요소들은 별도의 TF를 구성해 다루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루었던 아이덴티티 요소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미션(Mission): 슬로워크의 존재 이유와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

- 슬로건(Slogan): 조직의 정체성을 가장 임팩트 있게 설명하는 문구

- 가치(Values):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구성원이 추구해야 하는 것

- 경영원칙(Business Principles): 조직 운영의 기본이 되는 가치 판단의 기준

- 비전(Vision): 특정 기간 후를 바라보며 그리는 슬로워크의 이상적인 모습

- 전략(Strategies): 미션과 비전의 달성을 위해 조직이 선택하고 집중하는 구체적인 영역 또는 방향

- 반(反): 새로운 정체성을 갖춘 슬로워크가 반기지 않는 모습


아이덴티티의 개별 요소들을 만드는 일은 ITF에서 진행했습니다. 각 요소 별로 초안이 나올 때마다 IC의 검토를 거쳐 다시 수정하거나 안을 확정하는 일을 반복했고, 확정된 안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모든 구성원과의 공유를 거쳐 완성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완성된 아이덴티티 내용은 내일 포스팅되는 마지막 글에서 모두 다룹니다. 단, 반인재상은 그 자체로도 내용이 적지 않아 번외편에서 따로 다룰 예정입니다. 



4. 전략 목표 및 로드맵 수립


아이덴티티의 개별 요소들이 거의 완성될 즈음부터는 더욱 구체적인 실행 요소들을 구상했습니다. 먼저,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에서 전략 방향은 크게 4가지 영역으로 나왔는데요. 각 전략 방향에 대해 앞으로 실행해야 할 세부 전략 목표를 5개씩 세웠습니다. 모두 20개의 세부 전략 목표들이 앞으로 10년간 슬로워커들이 최선을 다해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이정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전략 목표가 나온 뒤에는 로드맵도 수립했습니다. 미션과 비전, 그리고 전략이 현재 기준에서는 이상적인 부분도 많으므로, 이로 인한 괴리감을 줄이고 실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로드맵을 수립하고 그 안에 단계적 계획과 구상을 담았습니다. 이 세부 전략 목표와 로드맵 구상까지가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의 범위였습니다.



5. ITF/IC 검토 및 구성원 리뷰


ITF는 매주 회의를 했고 IC도 격주 간격으로 회의했으니, 기본적으로 ITF/IC 검토는 지속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내용이 완성될수록 아이덴티티 전체 체계에서부터 각 요소의 정합성, 문구나 단어 선택의 이유, 내용의 취지와 의미 등을 더욱 깊이 검토하고 완성도를 높여 나갔기 때문에 프로세스 흐름 상으로는 아이덴티티 작업이 마무리되는 후반부의 절차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각 아이덴티티 요소에 대한 검토와 리뷰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되었습니다. 


1) 초안 작성: ITF에서 역할을 맡은 구성원이 초안 작성 

2) ITF 검토: ITF 내부 검토 및 수정을 통해 초안 확정

3) IC 검토: IC에서 ITF 안 검토 및 확정

4) 전체 공유: 전체 공유를 통해 최종 피드백 수렴 후 최종 확정


절차는 간단해 보이죠? 그런데 사실 아이덴티티 작업 기간이 본래 계획했던 4주를 훌쩍 넘어 12주로 늘어진 데는 ITF와 IC의 검토 과정이 가장 큰 몫을 했습니다. 초기에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때는 별다른 이슈 없이 진행되었었는데, 구체적인 아이덴티티 초안이 만들어지고 난 뒤부터는 ITF에서도 IC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긴 검토 절차를 거치면서 두 가지를 얻었는데요. 먼저, 서로의 생각을 열심히 주고받는 과정에서 최종 결정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졌다는 점이 중요한 소득이었습니다. 또한, ITF와 IC 멤버들이 활발한 의견 교환을 통해 여러 이슈에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그동안 서로의 가치관과 생각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기회가 부족했다는 점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6. 아이덴티티 확정


아이덴티티 요소들이 대부분 정해지고 난 뒤에는 ITF와 IC가 합동으로 마지막 회의를 열고 수립된 아이덴티티를 확정했습니다. 이와 함께 수립된 아이덴티티의 실행을 위한 후속 작업에 관해서도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아이덴티티의 각 요소가 잘 실행되는지 1년 마다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고, 3년에 한 번씩 아이덴티티 전체 요소들의 적절성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12월 중순에 있었던 이 ITF/IC 최종 회의를 마지막으로 아이덴티티 수립 작업은 종료되었고, ITF와 IC도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슬로워크 종무식에서 최종 확정된 아이덴티티를 모든 구성원에게 공유하면서 6개월에 걸친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습니다. 



마무리: 끝은 또 다른 시작?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가 되었고, 그 결과는 드디어 내일 공개됩니다. 하지만 슬로워크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입니다. 글을 아름답게 마치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마치는 회의에서 한 가지 더 결정된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이것입니다. 


"아이덴티티 수립은 회사의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니, 2016년 1월부터 사업 전략, 고객 경험, 조직 문화에 대한 3개의 후속 TF를 구성해 구체화 작업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덴티티 공개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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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워크는 올해로 10살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슬로워크에게도 10주년은 뜻깊은 한 해였고 그만큼 의미 있는 일들도 많았습니다(관련글: 슬로워크 10주년, 오래된 미래, 복잡한 반성).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수립하는 프로젝트를 무사히 진행한 것인데요. 미래를 바라보며 미션과 가치, 비전 등을 그려낸 이 프로젝트의 진행률은 현재 95%.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나머지 5%는 그동안 프로젝트가 진행됐던 과정들을 블로그에 공유하는 일이고, 이제 8차례에 걸쳐 블로그 글들이 모두 포스팅되면 프로젝트팀의 공식적인 활동은 마치게 됩니다. 


20~30명 안팎의 규모, 10년 전후의 나이, 그리고 아직 조직의 체계가 잡히지 않았지만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의지만큼은 남다른 기업이나 비영리조직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슬로워크처럼요. 하지만 작은 규모의 조직이 미션과 비전을 포함해 조직의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일은 엄두가 잘 나지 않죠. 그만큼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암담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딱 이런 상황에 있는 조직이라면 6개월간 치열한 작업 끝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수립한 슬로워크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프로젝트의 주요한 과정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각 포스팅 글의 순서와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동안의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작업이 궁금하셨다면 필독! 


①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② Until Now: 슬로워크 10년, 용하게 살아남았습니다. 

③ Right Now 1: 이러다 우리 망하는 거 아냐?

④ Right Now 2: 슬로워크 진단 결과는 '보통 회사'

⑤ Right Now 3: 그 회사가 알고 싶다. 

⑥ Right Now 4: 지금이 던킨도넛 먹을 때인가요?

⑦ From Now on 1: 아이덴티티 수립 과정, 이렇습니다.

⑧ From Now on 2: 슬로워크 아이덴티티를 공개합니다. 


슬로워크는 이번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먼저는 지난 10년을 슬로워크라는 이름을 걸고 지나오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를 통해, SNS를 통해, 클라이언트로부터 우리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은 많지만, 정작 '슬로워크의 정체성은 뭘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고민해 볼 여유를 충분히 가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0주년을 핑계 삼아 스스로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떠나보자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미션과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을 슬로워크만의 방식과 아이디어로 진행해보고 싶었던 바람도 한몫했습니다. 최근 슬로워크는 기존의 그래픽디자인 작업뿐 아니라, 브랜딩, 커뮤니케이션 전략, 캠페인 기획과 같이 조직의 아이덴티티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프로젝트들을 맡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조직을 다루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가진 역량을 우리 자신에게 제대로 적용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더 책임 있게 슬로워크가 가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부담 없이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슬로워크 내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슬로워커이자 CSO(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인 장수하늘소 발자국은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조직을 측정, 평가하고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분야에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사실 슬로워커 중에는 장수하늘소 발자국이 정말 그런 전문성을 가졌는지 직접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풍문으로만 들리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장수하늘소 발자국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이 프로젝트 리더로 낙점되었답니다. 낙점될 당시 하얗게 질린 장수하늘소 발자국의 표정을 모두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의 닻을 올리기 위한 준비 작업


슬로워크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는 7월의 첫날 기분 좋게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6월에는 사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프로젝트의 원활한 시작을 위해 했던 준비 작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뽑아보면 아래의 세 가지 정도가 있네요.


1) 아이덴티티 수립에 대해 구성원의 공감 얻기

2) 프로젝트를 추진할 조직 구성하기

3)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마스터플랜 세우기


좀 더 살펴보면, 먼저 프로젝트의 취지와 의미를 모든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 기초 설문도 진행하고 아이덴티티 수립을 통해 기대하는 점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기초 설문에서는 지금의 슬로워크를 사람으로 본다면 어떤 이미지에 가까운지를 조사해 봤는데요. '초록색 가방을 메고 다니는 통통하고 어리벙벙한 초딩,' '조용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유쾌하고 착실한 20대 ,' '조용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자기만의 소신은 가지고 있는 소녀' 같은 재밌는 응답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언급된 4개의 동사는 '조용하다,' '존재감 없다,' '성실하다,' '소신 있다'였습니다. 공감되시나요? 


그리고 구성원들은 슬로워크라는 회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요.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글씨 크기가 더 큰 단어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응답한 것입니다. 



위의 결과를 보고 누군가가 전문성과 실력에 관련된 용어가 별로 없어서 문제인 것 같다고 지적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이에 대해 다른 구성원이 전문성은 기본이 아니겠냐고 대답했던 것도 생각나고요. 이렇게 각자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도 정리해보고, 아이덴티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도 들으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프로젝트를 추진할 조직 구성도 사전에 준비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슬로워크의 경우 프로젝트를 위해 2개의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실제로 이끌어갈 팀은 아이덴티티 태스크포스(이하 ITF)로 이름 짓고 장수하늘소 발자국을 중심으로 7명의 슬로워커들이 모였습니다. 이와 함께 ITF의 작업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확정할 일종의 의사결정 기구로 아이덴티티 위원회(이하 IC)를 구성했습니다. IC에는 CEO인 소사 발자국을 포함해 예리하게 검토하고 의견을 줄 수 있는 10명의 슬로워커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준비로 프로젝트의 전체 진행 프로세스와 각 단계에서의 활동계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마스터플랜이 7월부터 시작된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의 전체 프로세스를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전체 진행 프로세스와 방향


일반적으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은 대동소이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어떤 관점으로 과정을 기획하느냐에 따라 프로세스와 세부적인 추진 활동들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슬로워크의 경우에는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추진한 동기 중에 10주년이라는 시간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고 또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암묵지들를 명확하게 드러내보자는 취지가 강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토대로 프로세스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마스터플랜을 통해 기획했던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세스는 지금이라는 시점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구성하였습니다.
1단계: 과거 10년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Until Now,' 
2단계: 현재 슬로워크의 모습과 조직을 둘러싼 경영환경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Right Now,'
3단계: 미래 10년을 바라보고 우리의 전체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상하는 'From Now on' 




이 세 단계는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하나의 독립된 프로세스 묶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실제 프로젝트 수행은 7개의 활동 범주와 40여 개의 프로세스 세부 활동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시점에 슬로워크의 고민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바로 어떤 기준과 방향성을 가지고 마스터플랜을 이행할 것인가였습니다. 모든 슬로워커들이 공통으로 희망하는 슬로워크의 아이덴티티는 '세계 최고'라거나 '글로벌 리더' 또는 '매출 몇억'과 같이 경쟁우위나 멋있어 보이는 구호는 아니었거든요. 그보다는 괴리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모습을 갖춰가는데 동인이 될 수 있는 솔직담백한 아이덴티티를 모든 구성원이 원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할 때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방향성 측면의 기준을 정했습니다.  


- 비전 및 전략체계의 모든 요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필수적인 요소들만 최소한으로 만든다. 

- 하지만 핵심가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아이덴티티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 보여주기보다는 실천하기에 최적화되어야 한다. 

- 비전을 만든다면 BHAG(Big, Hairy, Audacious Goal)이어야 한다. 

- 지속가능성 가치가 새로운 아이덴티티 전체에 녹아 있어야 한다. 

- Bottom-Up 방식으로 최대한의 공감대와 참여를 지향한다. 

- 회사의 비전이 개인의 비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점을 함께 고민한다. 

- 아이덴티티 작업은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되며 기한 준수보다 의미 발굴이 중요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기대했던 것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의 목적, 달리 말하면 프로젝트를 통해 기대하는 것일 텐데요. 공식적인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슬로워크가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앞으로 10년간 누구에게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슬로워크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의 95%가 완료된 지금, 과연 모든 구성원이 동기 부여되고 슬로워크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대감을 보일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하면 그것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개인마다 자신만의 관점과 선호가 있으니까요. 다만, 이제 슬로워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방향성 측면의 기준을 모두 충분히 고민하면서 만들었나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Until Now, Right Now, From Now on에서 진행했던 주요한 활동과 결과를 순서대로 공유하게 됩니다. 글이라는 매체의 제약 때문에 한계는 존재하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이 이번 아이덴티티 수립 프로젝트 글 연재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조금 의외이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용 하나하나보다는 슬로워크의 활동과 고민을 보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 좋은 힌트를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덴티티 공개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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