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시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2.17 민중가요로 보는 저항의 역사 (1)
  2. 2016.07.29 노래하는 인권운동가, 존 바에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많은 뮤지션들이 앞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2,300여 명의 음악인들이 시국선언에 참가했으며, 현 사태를 대변하는 민중가요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왔습니다. 시위현장에서는 여러 음악인이 공연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힘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시대를 떠나 암울한 상황에서는 많은 음악인이 앞서 행동했었는데요. 오늘은 이 중에서 민중가요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들을 알아볼까 합니다.


(출처: 음주가무연구소)


피트 시거, 우디 거스리 - 모던포크의 시작


미국 포크 음악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구전 민요를 수집하고 인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저항 가요의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미국 보수층에서는 이들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했습니다.


포크 음악의 양대산맥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스리 (출처: reddit)


피트시거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If I had a hammer’와 같은 비판적 가사를 써서 국내에서도 금지곡 처분이 되었습니다. 특히 ‘We shall overcome’은 전세계의 집회현장에서 각 나라에 맞게 번안되어 불리는 노래인데요. 한국에서는 ‘우리 승리하리라’로 알려져있습니다.


두 사람은 민중가요의 토대를 다졌으며, 구전민요를 정리하여 포크라는 현대적 음악 형식으로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We shall overcome’ 존 바에즈 버전


존 바에즈, 밥 딜런 - 60년대 저항의 아이콘


1960년대 초반, 20대 초반에 두 젊은 뮤지션은 피트시거, 우디 거스리의 영향을 받아 저항뮤지션의 행로를 걷습니다. 특히 존 바에즈는 프로테스탄트로 마틴 루터킹과 가까워지면서 그와 행보를 같이 하는데요. 마틴 루터킹의 연설로 유명한 워싱턴 행진 때는 밥 딜런과 존 바에즈가 앞장서서 노래하며 시위자들에게 큰 용기를 줬습니다.


서로에게 뮤즈였던 존 바에즈와 밥 딜런 (출처: NEW REPUBLIC)


존 바에즈는 베트남 전쟁 반전 시위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요. 징병 거부운동을 하다가 수감되기도 하고, 베트남에 직접 찾아가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 ‘Masters of war’, ‘A hard rain’s gonna fall’ 등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많이 쓰면서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젊은 세대들의 우상이었으며, 그들의 스타성으로 인해 포크 음악이 대중화되고 저항의 음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존 바에즈에 대해 더 알아보기


김민기와 양희은 - 유신정권의 ‘아침이슬’


지난 촛불 집회 때 가수 양희은 씨가 ‘아침이슬’을 불러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침이슬’의  원곡은 포크가수 김민기 씨가 작곡했는데요. 양희은 씨는 그를 자신의 음악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합니다.


원작자 김민기 씨는 1971년 자신의 이름으로 첫 앨범을 발매하는데요. 당시 유신 정부에서는 앨범수록곡 ‘아침이슬’의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가사가 불순하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선정합니다. 하지만 이런 금지곡 조치 덕에 운동권에서는 더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양희은 씨가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중가요가 되었습니다.


YWCA 노래모임 ‘청개구리’에서 만난 김민기와 양희은 (출처: SENIOR조선)


두 사람은 유신정권에서 좌파음악인으로 낙인 찍히면서 줄줄이 금지곡 처분을 받게 되는데요. 김민기 씨는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연행되기도 하며 순탄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한민국 70년대 저항문화 상징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후배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촛불집회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양희은 씨




노래를 찾는 사람들 -  민중가요의 황금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80년대부터 활동한 민중가요 노래패인데요. 흔히 줄여서 노찾사라고 부릅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선 투쟁으로 많은 집회가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대학가 중심으로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모여 결성되었습니다.


민중가요 대중화의 공로가 큰 노찾사 (출처: BSTODAY, 페이퍼크리에이티)


김민기 씨가 프로젝트 음반을 기획했지만, 심의 통과를 위해 많은 부분을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물은 기획의도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고 정권의 탄압으로 판매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6월 항쟁으로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음반발매와 현장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집에서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거친 광야에서’, ‘사계’ 등 거의 모든 곡이 히트하면서 대중적으로 성공합니다.

그 이후로도 노찾사는 사회적 활동은 물론이며, 김광석, 안치환 등 재능이 넘치는 음악인들도 배출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사에도 큰 획을 남깁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사계



정태춘과 박은옥 - 사전심의 제도와의 외로운 싸움


한국의 피트시거로 불리는 정태춘 씨는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을 발표하며 호평을 받고 여러 방송사에서 수상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박은옥 씨를 만나 결혼하며 외적으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음반 사전심의제도 때문에 가사를 부분 수정해서 발매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또한 홍보때문에 어색해하던 방송출연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방황하며 슬럼프를 겪게 됩니다. 80년대에는 부인 박은옥 씨와 함께 듀엣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으로 다시 성공하지만 이때도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그리운 시냇가)


1990년, ‘아, 대한민국…’ 앨범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부하고 대학가와 공연장에서 배포됩니다. 이 앨범은 사전검열 제도에 공식적으로 저항한 최초의 음반으로 한국 음악사에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데요. 앨범도 전통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강렬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명반이었습니다.


사전검열제도를 거부한 두 앨범 (출처: 엠넷 )



정태춘 씨는 1991년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사전검열제도와 일선에서 맞서게 됩니다. 1993년에도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앨범을 심의 없이 배포를 강행했는데요. 사인판매와 관객들 지지서명까지 받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같은 해에 문화체육부는 서울지검에 정태춘 씨를 고발했고 정태춘 씨는 음반법위반으로 불구속기소됩니다.

이 사건으로 사전검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으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는 정태춘 씨 기소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많은 예술인이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 공판부터는 관련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였으며, 3차에서는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으로 판정하였습니다. 정태춘 씨는 선고유예를 받으며, 이것으로 사전검열제는 폐지되었습니다. 그의 5년간 외로운 싸움이 결실을 보았으며, 이는 한국 음악사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 지난 11월 촛불시위에도 참여하여 사회적 신념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11월 촛불시위에 참가한 정태춘 씨


이 외에도 언급하지 못한 음악인들이 매우 많은데요. 민중가요 중심으로 글을 쓰긴 했지만, 많은 음악인이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일선에서 활동했던 그들의 용기와 사회적 신념은 앞으로도 대중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며, 많은 음악인에게 모범이 될 것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텐아시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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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ikipedia)



존 바에즈(Joan Baez)는 대중에게 밥 딜런, 스티브 잡스의 연인이었으며, 60년대를 풍미한 ‘포크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칭호들은 그녀를 표현하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왜냐면 그녀는 뮤즈, 혹은 포크 뮤지션이기 전에 인권운동가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음악에서 그렇듯 전쟁터에서도 생명의 편을 들지 않는다면 그 모든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소용없죠.

- 바에즈



오늘은 평화주의자이자, 인권운동가 존 바에즈를 알아볼까 합니다.



유년기 - 인종과 사상의 ‘다름’, 음악의 자극제가 되다


존 바에즈는 멕시코인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반전론자였던 그녀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나이부터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런 아버지의 행동이 존 바에즈에게는 가장 큰 유산이었다고 말하는데요.




바에즈가 여성들 (출처:Heretic, Rebel, a Thing to Flout)



그녀는 남캘리포니아 레드랜즈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백인들은 피부가 검은 멕시코계라는 이유로 따돌렸는데요. 그리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여,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그때 느낀 ‘고립’과 ‘다름’이 음악을 하기 위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노력의 결과, 그녀만의 톤과 비브라토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존 바에즈는 교내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청아한 목소리는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자, 우디 거스리(Woody Gurthrie)를 잇는 포크계의 샛별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킹과 흑인인권 운동에 앞장서다


프로테스탄트였던 존 바에즈는 퀘이커교 모임을 통해 마틴 루터킹의 연설을 듣고, 그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본인이 인종차별을 경험했고, 흑인 출입을 제한한 공연까지 경험한 그녀는 누구보다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크게 느꼈는데요. 마틴 루터킹의 연설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와 비폭력주의 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상적 스승’ 마틴 루터킹과 함께 (출처:nesta)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때, 존 바에즈는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35만 명의 군중을 이끌며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열창했습니다. 그 외에도 흑인 아이들이 백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현장에 있었으며,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단순히 가수가 아닌 인권운동가로 알려집니다.


마틴 루터킹은 존 바에즈의 사상을 다지는 데 다른 누구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주고,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소울메이트’ 밥 딜런과 인권을 노래하다


무명이었던 밥 딜런(Bob Dylan)은 존 바에즈를 동경하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피트 시거(Pete Seeger)의 소개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동갑내기이면서 서로의 재능에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이미 스타였던 존 바에즈는 그를 자신의 무대 게스트로 세우면서 도움을 주는데요. 밥 딜런은 순식간에 포크의 거물이 됩니다. 존 바에즈는 밥 딜런에게 정치적 행보에 동참하길 원했지만, 밥 딜런은 원하지 않았으며, 결국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됩니다.




‘소울메이트’ 밥 딜런과 함께 (출처:tripod)



하지만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와 같은 전쟁반대, 인권을 노래하는 곡들을 씁니다. 그때부터 밥 딜런은 60년대 최고의 저항 뮤지션이자, 가사를 문학 반열에 올려놓은 시인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그의 방식을 인정하고, 이 인연은 나중에 ‘롤링선더’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통해 이어집니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중략)

얼마나 많은 포화가 휩쓸어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곁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 밥 딜런 ‘Blowin’ in the wind’ 가사 중


대중들에게 두 사람은 혼동기였던 60년대에 한 줄기의 빛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포크는 저항의 음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그들을 롤모델 삼아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공연에서 밥 딜런 곡을 자주 부르는  바에즈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최전선에 나서다


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이 거세지자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납니다. 존 바에즈도 당시 오클라호마에서 징집 거부 운동 대열에 합류하는데요. 그때 징병 거부 운동의 지도자인 데이빗 해리스(David Harris)를 만나, 비폭력 시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합니다.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인에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데이빗 해리스가 징병거부로 수감되면서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남편이었던 데이빗 해리스와 함께(출처: three years in prison)



70년대 초, 존 바에즈는 베트남 남부에 직접 찾아가는데요. 하지만 그때 ‘크리스마스 폭격’이 시작되고 그녀는 11일 동안 방공호 아래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곡은 금지곡이 되었지만 군인들은 몰래 들었으며,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거나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 방공호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내게 어떤 선물을 주었던가

내게 미소를 지어 주고 조용히 고통을 나누었지

(중략)

나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들아, 넌 지금 어디 있니?


- 바에즈 - ‘Where Are You Now, My Son?’ 가사 중


하노이 외에도 태국의 라오스 피난민 수용소, 말레이시아 표류난민들의 임시거류지에서 노래를 부르며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우드스탁, 반전과 희망을 노래하다


혼란스러운 60년대, 당시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기성세대의 불만으로 히피 문화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반전, 사랑, 평화를 외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개최됩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더 후 등 당대 최고 록스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존 바에즈 또한 임신한 몸으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50만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반전을 외쳤습니다.




우드스탁의 영웅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출처:reddit)



우드스탁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기타로 연주해서 베트남 전쟁에 허덕이는 미국을 조롱했는데요. 왜곡된 기타음으로 폭격하는 소리를 내는 모습은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우드스탁은 60년대의 종지부였으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존 바에즈는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첫 번째 순서로 노래를 불렀으며, 역사적 현장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습니다.




존 바에즈, 노래하는 인권운동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사회적, 정치적 시각은 확고했습니다. 항상 비폭력 저항의 원칙에 충실하며, 세계 방방곡곡에서 그녀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프랑코 정권이 끝난 스페인에서, 생방송 중 저항 세력의 성가로 유명한 ‘노 노스 모베란’을 열창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사라예보 첼리스트’로 유명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와 함께 공연하며 시민들을 위로했는데요.



'사라예보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행동에 자극받은 존 바에즈



그 외에도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했으며, 후마니타스라는 인권보호기구의 회장으로 지내면서 군비 철폐에 관한 갖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인정받아,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고, 인권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교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아틀란타에서는 8월 2일, 산타나 크루즈에서는 8월 27일을 ‘존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로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명예는 행동에 깃드는 것이다.”(출처: thelocal)




뮤지션은 자신의 가치를 음악을 통해 표현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음악은 유행을 타게 되고 대중과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추구하던 가치가 행동에 깃들었기 때문에 더 인정받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녀의 음악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당장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 바에즈




출처: 포크의 여왕 존바에즈, 존바에즈 자서전 -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다



작성: 류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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