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Wikipedia)



존 바에즈(Joan Baez)는 대중에게 밥 딜런, 스티브 잡스의 연인이었으며, 60년대를 풍미한 ‘포크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칭호들은 그녀를 표현하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왜냐면 그녀는 뮤즈, 혹은 포크 뮤지션이기 전에 인권운동가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음악에서 그렇듯 전쟁터에서도 생명의 편을 들지 않는다면 그 모든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소용없죠.

- 바에즈



오늘은 평화주의자이자, 인권운동가 존 바에즈를 알아볼까 합니다.



유년기 - 인종과 사상의 ‘다름’, 음악의 자극제가 되다


존 바에즈는 멕시코인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반전론자였던 그녀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나이부터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런 아버지의 행동이 존 바에즈에게는 가장 큰 유산이었다고 말하는데요.




바에즈가 여성들 (출처:Heretic, Rebel, a Thing to Flout)



그녀는 남캘리포니아 레드랜즈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백인들은 피부가 검은 멕시코계라는 이유로 따돌렸는데요. 그리고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하여,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그때 느낀 ‘고립’과 ‘다름’이 음악을 하기 위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노력의 결과, 그녀만의 톤과 비브라토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존 바에즈는 교내 장기자랑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청아한 목소리는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자, 우디 거스리(Woody Gurthrie)를 잇는 포크계의 샛별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킹과 흑인인권 운동에 앞장서다


프로테스탄트였던 존 바에즈는 퀘이커교 모임을 통해 마틴 루터킹의 연설을 듣고, 그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본인이 인종차별을 경험했고, 흑인 출입을 제한한 공연까지 경험한 그녀는 누구보다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크게 느꼈는데요. 마틴 루터킹의 연설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와 비폭력주의 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상적 스승’ 마틴 루터킹과 함께 (출처:nesta)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때, 존 바에즈는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35만 명의 군중을 이끌며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열창했습니다. 그 외에도 흑인 아이들이 백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현장에 있었으며,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단순히 가수가 아닌 인권운동가로 알려집니다.


마틴 루터킹은 존 바에즈의 사상을 다지는 데 다른 누구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주고,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소울메이트’ 밥 딜런과 인권을 노래하다


무명이었던 밥 딜런(Bob Dylan)은 존 바에즈를 동경하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피트 시거(Pete Seeger)의 소개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동갑내기이면서 서로의 재능에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이미 스타였던 존 바에즈는 그를 자신의 무대 게스트로 세우면서 도움을 주는데요. 밥 딜런은 순식간에 포크의 거물이 됩니다. 존 바에즈는 밥 딜런에게 정치적 행보에 동참하길 원했지만, 밥 딜런은 원하지 않았으며, 결국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됩니다.




‘소울메이트’ 밥 딜런과 함께 (출처:tripod)



하지만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와 같은 전쟁반대, 인권을 노래하는 곡들을 씁니다. 그때부터 밥 딜런은 60년대 최고의 저항 뮤지션이자, 가사를 문학 반열에 올려놓은 시인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그의 방식을 인정하고, 이 인연은 나중에 ‘롤링선더’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통해 이어집니다.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중략)

얼마나 많은 포화가 휩쓸어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곁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 밥 딜런 ‘Blowin’ in the wind’ 가사 중


대중들에게 두 사람은 혼동기였던 60년대에 한 줄기의 빛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영향으로 포크는 저항의 음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그들을 롤모델 삼아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공연에서 밥 딜런 곡을 자주 부르는  바에즈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최전선에 나서다


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이 거세지자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납니다. 존 바에즈도 당시 오클라호마에서 징집 거부 운동 대열에 합류하는데요. 그때 징병 거부 운동의 지도자인 데이빗 해리스(David Harris)를 만나, 비폭력 시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합니다.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인에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데이빗 해리스가 징병거부로 수감되면서 둘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남편이었던 데이빗 해리스와 함께(출처: three years in prison)



70년대 초, 존 바에즈는 베트남 남부에 직접 찾아가는데요. 하지만 그때 ‘크리스마스 폭격’이 시작되고 그녀는 11일 동안 방공호 아래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곡은 금지곡이 되었지만 군인들은 몰래 들었으며,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거나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 방공호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내게 어떤 선물을 주었던가

내게 미소를 지어 주고 조용히 고통을 나누었지

(중략)

나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들아, 넌 지금 어디 있니?


- 바에즈 - ‘Where Are You Now, My Son?’ 가사 중


하노이 외에도 태국의 라오스 피난민 수용소, 말레이시아 표류난민들의 임시거류지에서 노래를 부르며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우드스탁, 반전과 희망을 노래하다


혼란스러운 60년대, 당시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기성세대의 불만으로 히피 문화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반전, 사랑, 평화를 외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개최됩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더 후 등 당대 최고 록스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존 바에즈 또한 임신한 몸으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50만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반전을 외쳤습니다.




우드스탁의 영웅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출처:reddit)



우드스탁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기타로 연주해서 베트남 전쟁에 허덕이는 미국을 조롱했는데요. 왜곡된 기타음으로 폭격하는 소리를 내는 모습은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우드스탁은 60년대의 종지부였으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존 바에즈는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첫 번째 순서로 노래를 불렀으며, 역사적 현장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습니다.




존 바에즈, 노래하는 인권운동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사회적, 정치적 시각은 확고했습니다. 항상 비폭력 저항의 원칙에 충실하며, 세계 방방곡곡에서 그녀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프랑코 정권이 끝난 스페인에서, 생방송 중 저항 세력의 성가로 유명한 ‘노 노스 모베란’을 열창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사라예보 첼리스트’로 유명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와 함께 공연하며 시민들을 위로했는데요.



'사라예보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행동에 자극받은 존 바에즈



그 외에도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했으며, 후마니타스라는 인권보호기구의 회장으로 지내면서 군비 철폐에 관한 갖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인정받아,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고, 인권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교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아틀란타에서는 8월 2일, 산타나 크루즈에서는 8월 27일을 ‘존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로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명예는 행동에 깃드는 것이다.”(출처: thelocal)




뮤지션은 자신의 가치를 음악을 통해 표현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음악은 유행을 타게 되고 대중과 멀어지기 마련인데요.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추구하던 가치가 행동에 깃들었기 때문에 더 인정받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녀의 음악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당장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 바에즈




출처: 포크의 여왕 존바에즈, 존바에즈 자서전 -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다



작성: 류태석


Posted by slowalk

소수 최상위 계층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움직이는,

그리고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굶지는 않고 먹고 살며 어느 정도의 유흥을 즐기지만, 자유는 없는 세상...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었을 법한 이런 사회의 모습은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0월 15일에 있었던 전 세계적인 거리시위가 벌어진 곳 중 한 곳이었던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연설에도 이런 비유가 들어 있었습니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편지가 검열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고 "내가 보낸 편지가

파란 잉크로 적혀 있다면 거기 적힌 내용이 사실이지만 빨간 잉크로 적혀 있다면 거짓이다." 라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한 달 후 편지가 왔다. 파란색 잉크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기에서 모든 게 훌륭하다. 가게에는 좋은 음식들이 가득 차 있고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아파트는 크고 호화스럽다. 그런데 여기서 살 수 없는 유일한 물건이 빨간 잉크다."

 

 

  

 

 

 

10월 15일 전 세계 80여 개국에 걸쳐 1500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 시위는

Occupytogether.org 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점점 확산되고 있는데요, 점점 기형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체제에 반대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형적 사회체제는 빈곤국가만이 아니라 스페인, 미국, 영국 등 내로라하는 강대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상위 1% 소득계층이 전체 국민 소득의 23%를 차지하는 기형적 형태는 왜 많은 사람들이 월가 반대 시위에

동참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5일 시위가 있고 난 다음 날 16일 열린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 헌정식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킹 목사도 월가의 무절제와 맞서 싸우길 원했을 것이라며, 이번 시위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비추었습니다.

 

 

이러한 기형적 사회체제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깊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현 정부는 부자감세, 보편적 복지 반대,

공기업민영화, 노동시장유연화 등 이미 한계를 드러낸 바 있는 신자유주의 폐해정책을 다시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상을 국민들도 느꼈는지 강정마을, 희망버스, 비정규직, 반값등록금 시위등을 통해

99%인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안철수씨도 이런 기형적 사회/기업 구조에 대해 코멘트를 한 적이 있었죠.

 

 


 

 

돈 많은 국내 대기업의 사업장 중에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50% 이상인 곳이 많다는 것도

참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탐욕 없는 자본주의는 꿈속의 이야기일까요?

1%의 탐욕을 버리지 않고는 대기업과 상위소득계층의 생존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미국 노스타코다 주의 노스다코다 주립은행의 사례를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노스다코다 주립은행의 최고경영자인 에릭 마이어는 '굳이 경제를 어렵게하는 비우량 대출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출을 저리로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금융기업들이 부도를 맞을 때도 노스다코다 은행은 5,7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몇일 전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실행하는 방법을 넘어, 우리는 이제 

지젝의 연설 속의 비유처럼 빨강잉크를 찾아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더 이상 탐욕의 1%가 움직이는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착취대상으로서의 99%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 것 처럼 우리의 시위가 추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안에 대한 고민과 실행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세요. 변화의 주체는 탐욕과 꼼수로 가득찬 '그들이'아닌,

 

'우리'

 

바로 여러분과 '나'라는 것을요..

 

by 토종닭 발자국


사진 및 자료 출처

http://www.thenewsignificance.com
http://www.occupytogether.org


 

Slavoj Zizek: "We Are The Awakening" - Occupy Wall Street Talk from The New Significance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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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lo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