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미술사가이자 교수인 저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가 시대 착오적인 대학 강의를 보다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강의 내용을 재구성해 발간한 단행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술 제도를 포함한 다양한 제도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습과 편견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과 편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혹은 이에 대한 도전인 여러 작품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쉽고 자연스럽게 미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의 대표적인 몇 가지 이슈를 제목으로 들어 소개하겠습니다.



1.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미술이다?


왼쪽: 마르셀 뒤샹 ‘샘’ 

오른쪽: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이미지 출처: (왼) Wikimedia Commons (오) Wikimedia Commons



<샘>은 현재의 우리 것이 아닌 다른 문화와 시대의 사물들을 미술로 취급하고 이해하려는 근대적 관습에 대한 논평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뒤샹이 화장실의 변기를 미술 전시회의 좌대 위에 올려놓고 ‘샘’이라고 명명함으로써 변기를 미술로 바꾼 것은, 미술사가들이 이만오천년 전의 인물상을 박물관에 전시하여 ‘비너스’라 명명하고, 그것에 미술이라는 세례명을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_ 미술이란 무엇인가 31p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미술로 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속단이며, 이 인물상을 처음 만든 사람들과 우리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인물상은 약 이만오천년 전에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 물체가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사용했는지, 또는 그들이 어떤 신앙과 의식을 가졌는지 모른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는 이름도, 이를 미술로 여기는 생각도 현대 미술사가들에게서 비롯되었다. 물론 이 비너스 상이 가진 풍부한 형태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비너스 상은 수많은 상 중 하나였을 수도 있고 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용품이었을 수도 있다. 

_ 미술이란 무엇인가 54~55p



2.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든 미술가는 남성이다?


헬렌가드너의 『세기를 통한 미술』



이미지 출처: Art Institvte Chicago


『세기를 통한 미술』에서 헬렌가드너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여자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풍요를 묘사한 것이다.’

‘그’라는 인칭대명사의 사용, 즉 미술가가 남성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미술가가 남성이라는 가정은 인류의 나머지 절반인 여성도 창조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가드너는 최근 판 서문에서 편집자들과 저자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으며, 양쪽성 모두를 ‘그’라고 지칭하거나 인류를 ‘mankind’라는 용어로 표현한다고 해서 여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가드너의 책에는 재현의 의미와 그 힘을 탐구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런 책의 편집자들과 저자들이 1,000페이지가 넘는 배타적이고 가부장적인 언어의 의미와 힘을 부인하는 것은 불행한 아이러니다. 

_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134~135p



3. 피카소는 평생에 걸쳐 천재의 신화를 해체했다


왼쪽: 피카소의 ‘나의 기쁨’

오른쪽: 조르주 브라크의 ‘기타를 든 사내’



이미지 출처: (왼) Artchive (오) wikipedia



조르주 브라크와 피카소는 거의 같은 그림을 그림으로써 유일하고 독창적인 ‘서명’과 같은 양식을 창조해내는, 미술가 개인의 능력이라는 문제에 도전했다.

그들이 협동으로 작업한 ‘분석적 입체파’ 프로젝트는 우리가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이것을 가장 개인적이고도 높이 평가받는 ‘창조성’의 형태로 재현하는 방식이 실은 인간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_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207p



피카소의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이미지 출처: artMuse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달리, 피카소의 가장 큰 공헌은 입체파가 아니라 콜라주였다. 

콜라주는 서구 회화의 전통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 왔다. 이는 자율적이고 심미화된 회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고 창의성에 대한 미술가의 자율적이고 절대적인 관계에 모순이 드러나게 했다. 또한, 대량생산된 재료의 도입으로 유화물감과 캔버스라는 순수 회화의 성역은 파괴되었다. 

_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210~212p



4. 미술관 벽은 하얘야 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미술관의 흰 벽은 작품에서 구체성, 현장성을 제거해 중립적 추상 공간에 놓고 미술을 나머지 세계와 분리시키는 것이다. 

미술관 내의 작품들은 과거의 종교적, 세속적 기능에서 소원해지고, 소장품은 연대기, 국가, 유파별로 배열되어 예술이 세계와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미술작품이 사회의 여타 다른 물건들과 구별되기 어려워진 현대에서는 미술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미술을 비 미술로부터 구별해 내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 되었고 이에 따라 미술의 범위를 확인하는 선별과정과 통과제의를 관장하는 미술관계자들의 취향과 철학이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게 되었다.

_박물관 173p



책에서는 이 밖에도 다양한 작품과 제도, 미술사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미술과 문화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 볼 것을 추천합니다. 일부 발췌된 책의 내용을 공감하는 사람에게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기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술에 대한 다양한 견해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참고도서 :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y 사막여우 발자국



Posted by slowalk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은 매번 다른 오프닝시퀀스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프닝시퀀스에서 심슨 가족이 티비를 보기 위해 모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각 장면마다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오프닝은
심슨의 본편을 보기에 앞서 제공되는 소소한 재미, 그 이상을 선사합니다.

▲ 심슨오프닝에서  가족이 쇼파에 모여 앉는 장면만을 따로 편집해서 모아놓은 영상.






오프닝 시퀀스는 매번 다른 감독들이 콘티를 짜고 감독합니다.
10월 10일날 방영된 오프닝시퀀스는 길거리 아티스트로 유명한 뱅크시가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먼저 감상해보실까요.





뱅크시가 만든 오프닝 시퀀스는 처음까지는 기존의 오프닝과 비슷한 가운데,
뱅크시의 기존 그래피티 이미지가 살짝 노출되는 모습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심슨의 거실에 모이고 난 뒤 부터
화면은 애니메이션을 하청해서 만드는 배경으로 전환됩니다.

지금 보고 있는 즐거운 오프닝애니메이션도, 누군가의 하청에 의한 노동착취,
공정하지 못한 거래, 동물학대,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들이 이면에 존재함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 아닐까요.
이 오프닝시퀀스를 접하고 나서 본편을 어떤 심정으로 접할 수 있을지 시청자들의 마음이 궁금해집니다.

뱅크시의 최근 작업들을 보면 그의 관심사에 "환경, 공정무역" 이라는 이슈가 추가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홈페이지의 outdoors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그래피티, 설치작업을 보면
환경과 관련된 이슈를 건드리고 있는 최근의 작업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천 어딘가에 죽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곰의 모습.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의 모습과, 낡고 썩어서 버려진 폐기물의 모습이 황량한 이미지를 선사하는군요.




우리나라의 대기업형 대형마트에 해당하는 TESCO가 쌓아가는 모래왕국입니다.
그 위에 건설된 거대한 모래성, 유니언잭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다른 설치작업을 살펴볼까요. 뱅크시는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전을 넣으면 음악소리와 함께 앞뒤로 움직이는 전동놀이기구에 주목하였습니다.
기존에 있던 돌고래 기구에다가 BP(영국국영석유회사) 의 드럼통과 그물을 설치함으로써 환경문제를 꼬집습니다.






이렇게 뱅크시의 작업들은 기존의 환경안에 설치물, 그래피티를 추가시킴으로써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고 위트있는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성공합니다.

피카소의 격언을 훔친 뱅크시. 피카소가 한 말.  "나쁜 예술가 모방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위의 사진 역시 뱅크시의 작업입니다.
"나쁜 예술가는 모방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는 피카소의 격언을,
피카소의 이름을 지우고 뱅크시의 이름을 새김으로써 정말 그의 생각을 훔치는 작업을 만들어냈네요.
뱅크시가 우리주변의 환경을 둘러보고 그에 대한 생각들을 기존의 풍경을 훔침으로써 새로운 고발을 시도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 주변의 풍경, 환경을 한 번 찬찬히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한명 한명의 관심이 모일 때  좀 더 나은 환경과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Posted by slo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