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logy

38명의 아시아 시빅해커 민주주의를 말하다

slowalk 2019. 6. 20. 16:53

한국 빠띠쿱, 대만 거브제로, 일본 코드포재팬 밋앤핵(Meet & Hack) 행사 개최

 

‘아시아 시빅해커(Civic Hacker)들이 한데 모여 바다를 보며 해킹을 한다?!’

 

쿨하고 왠지 멋지죠. 가능하다면 각국의 정치 및 사회 이슈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고 협업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상상만 하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빠띠쿱, 대만 거브제로, 일본 코드포재팬이 2019년 6월 8일~9일 이틀 동안 일본 오키나와 코자 시(Koza)의 스타트업 전용 공간 라군(Lagoon)에서 ‘Facing the Ocean Meet & Hack’ 행사를 열었어요. 여기서 밋앤핵은 만나서 함께 해킹한다는 의미예요. 개발자만 참가하는 해커톤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오거나이저들이 섬세하게 고민했죠. 덕분에 한국, 대만, 일본, 홍콩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참가자 38명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 커뮤니케이터, 정부 관계자까지 아울렀네요.

 

장소는 빠띠쿱의 시스가 제안했어요. 복잡하고 아픈 동아시아의 역사를 같이 기억하고 싶어서였다고요. 오키나와는 과거 류큐왕국이라는 독립적인 나라였습니다. 일본 막부와 미국의 침략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라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정하지 못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시스는 이것이 동아시아의 역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봤어요.

 

행사 장소 근처 길거리 전경

직접 가보니 그런 역사가 정말 흔적처럼 남아있더라고요. 일본 표준어와 다른 류큐 언어를 쓰는 사람도 봤고, 미군 주둔지여서 퇴근 시간이면 미국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죠. 게다가 지리적으로는 한국과 대만, 또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오는 참가자들에게 중간 지역이어서 모두에게 의미있고 좋은 장소였던 것 같아요.

 

이번 행사를 주최한 세 조직, 한국의 빠띠쿱, 대만 거브제로, 일본 코드포재팬은 2018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어요. 열린정부파트너십 행사에서 거브제로 구성원들과 빠띠쿱의 시스가 아시아 시빅해커 네트워크 및 협업 논의를 시작했고, 코드포재팬은 거브제로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아 합류하게 됐어요. 이후 한 국가에서 오프라인 행사가 있을 때 비용과 시간을 쓸 수 있는 구성원이 참가해서 잠깐 얼굴을 보고 한 두시간 정도 미팅하는 방식으로 네트워킹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큰 협업 기회와 오프라인 네트워킹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는 모든 것이 확실치 않았지만 일단 기회에 대한 목마름으로 길을 찾았습니다. 결국 ‘한국, 대만, 일본의 활동가들이 만나 서로에 대해 깊게 이해하는 1박 2일 이상의 워크숍’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나왔어요. 현실적인 문제와 정말 이게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다들 긍정적으로 반응했어요. 판을 깔면 다들 열린 마음으로 교류할 것이라고 봤죠.

 

세 가지 측면에서 그랬어요. 첫째, 아시아 국가들은 정치 및 사회 문제를 주제로 서로 나눌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서구 국가들과의 거리와 비교했을 때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슷한 정치, 사회, 문화 경험을 공유할 가능성이 크지만, 아시아 국가 시민들이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이런 문제를 논의한 경험이 별로 없었잖아요. 여행객만 오갈 뿐이죠. 따라서 밋앤핵 행사를 통해 이런 논의가 작게나마 이뤄지기를 바랐고, 행사의 키워드인 시빅해킹은 그 장을 열어줄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둘째, 구체적으로 협업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프라인 만남의 묘미죠. 참가자들이 각 나라의 특수하거나 보편적인 이슈들을 꺼내어놓으면 서로 제3자 입장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과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면 솔루션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고요. 실제로 동아시아 여성 인권 신장과 관련된 뉴스를 모아보는 해킹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대만 참가자가 과제를 진행하면서 한국과 일본, 홍콩의 뉴스를 모아서 번역을 해달라고 참여를 독려했어요. 나중에는 각국에서 여성 참가자들이 나와 마이크를 잡고 뉴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그것 자체도 벅찬 경험이었는데 이것을 지도에 표시해 사이트로 만들어냈어요. 의미 있는 협업 사례였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아시아 시빅해킹 네트워크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는 첫 번째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 번의 행사로 갑자기 서로 활발하게 소통을 한다거나 각국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낼 수는 없겠죠. 하지만 밋앤핵과 비슷한 크고 작은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다 보면 참가하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회문제, 또는 전혀 다른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라는 인식을 할 수도 있겠죠. 물론 개인이 서로 다른 방향의 협업을 하면서 네트워크를 뻗어 나갈 수도 있겠고요.

 

저도 슬로워크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취재차 참여했어요. 슬로워크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확대한다는 미션을 지닌 회사잖아요. 네트워크의 규모를 한국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겠죠.^.~ 더 크게, 아시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이니 놓칠 수 없었습니다. 또 슬로워크도 그동안 신뢰기술, 정부기술, 젠더 폭력에 대항하는 기술, 오픈소스 기술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고요. 무엇보다 형제회사 빠띠쿱이 밋앤핵의 주최 조직 중 한 곳이었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저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기록할 수 있었답니다. 그 기록을 두 차례에 걸쳐 블로그에 옮기려 해요. 이번 글에서는 행사 주최 조직 소개, 행사의 전체적인 분위기, 시간표, 행사 뒤 소감을 간단하게 전할게요.

 

다음 글에서는 ‘시빅해킹이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도 같이 궁금해하셨을 질문일 텐데요. 저도 너무 답답해서 행사 내내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거든요.^^; 처음에는 리서치를 해도 만족할만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 이것은 한문장으로 깔끔하게 떨어지기 힘든 개념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렇다면?! 시빅해커 본인들이 생각하는 시빅해킹과 그들의 경험을 들어야만 진짜 의미에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겠죠.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다음에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시빅해킹은 무엇인가요?” 이미지 출처: 빠띠쿱 황은미

그래도 살짝이나마 시빅해킹을 설명해볼게요. 이번 글을 읽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정보니까요.

 

우선 단어 자체가 주는 아우라가 있어서 접근하기 쉽지 않죠. ‘해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왠지 기술 개발과 관련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나와는 먼 세계의 이야기일 것 같고요. 아니 근데, 해킹은 컴퓨터로 나쁜 짓을 하는 행위 아니었나요…? 게다가 앞에 ‘시빅(Civic)’이 붙으니 시민사회와 관련이 깊을 것 같아서 진지해져야만 할 것 같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하게 되고요..

 

좋은 소식은, 행사 참가 전 나름대로 리서치를 하고 빠띠쿱 구성원들과 논의를 하면서 접한 시빅해킹은 마냥 어렵기만 한 개념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저만의 설명을 도출해보기도 했답니다, 이렇게요.

 

“시빅해킹은 시민이 겪는 모든 문제에 기술, 디자인, 협업이라는 세 가지 접근법을 사용해서 사회적으로 최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을 내놓고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참여를 유도하는 ‘문제해결 방법론’”

 

최대한 내용을 담아보았는데, 어떤가요?^^ 읽는 분들도 다음 글이 나올 때까지 같이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빅해킹의 윤곽을 대략 그렸으니 밋앤핵 행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인데요. 이제 이 행사를 열기 위해 각 국가에서 어떤 시빅해커들이 모였는지 살펴볼까요? 주최 조직 세 곳을 소개해볼게요.

 

이미지 출처: 빠띠쿱

우선 빠띠쿱은 민주주의를 혁신하고 작은 조직과 커뮤니티부터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입니다. 시빅해커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죠. 네 개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어요. 민주주의 서울을 통해 온오프라인할 것 없이 지역 주민과 정부의 소통, 주민과 주민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가브크래프트로 시민참여형 캠페인을, 빠띠xyz로 조직별 민주주의 문화 형성을 지원합니다. 타운홀은 행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시간 토론 플랫폼이죠. 이외에도 컨설팅, 워크숍 운영 등의 일을 해요.

 

이미지 출처: 거브제로

거브제로(g0v)는 대만의 대표 시빅해커 커뮤니티죠. 2012년 오픈소스 진영 개발자들이 모여서 만들었어요. gov의 o를 0으로 바꿔 웹사이트로 만든 ‘그림자 정부’였죠. 디지털의 0과 1을 상징하면서 전통적인 정부와 다르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고요. 시민이 어떤 정부 정책에 반대해서 0부터 만들어나간다는 뜻도 있어요. 거브제로는 2014년 해바라기 운동 당시, 걸출한 인물 오드리 탕을 중심으로 온라인 거점이 되면서 크게 주목받았고,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지금은 정부 행정 효율화나 중국 정부의 대만 압박에 대항하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이미지 출처: 코드포재팬

마지막으로 코드포재팬(Code for Japan)은 일본 전역의 시빅해커 네트워크예요. 먼저 ‘코드포~’ 조직은 각 나라에서 조직되는 대표적인 시빅해킹 커뮤니티입니다. ‘코드포아메리카', ‘코드포아프리카', ‘코드포유럽' 등이 있어요. 지역별로 조직하고 싶다면 ‘코드포샌프란시스코', ‘코드포고베’ 등 자유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위의 개념이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죠.

 

커뮤니티인 만큼 운영 방식은 대륙, 나라, 조직마다 다른데요. 일본의 경우 코드포재팬은 나라 전체의 ‘코드포~’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조직으로서 허브 역할을 담당합니다. 지역 커뮤니티 활동이 각자 활발해요. 예를 들어 코드포고베가 그 지역의 실질적인 시빅해커 커뮤니티로서 역할을 하고요. 만약 누군가 자기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거나 다른 커뮤니티와 효율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면 코드포재팬에 도움을 요청해요. 대신 코드포재팬은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보내서 지역 커뮤니티 사이에 정보를 유통시키고, 두 달에 한번 전체 해커톤을 열어서 느슨한 유대감을 확보합니다.

 

세 조직은 이번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운영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하는 한편 유효한 결과물을 내도록 참가자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었어요. 심지어 사전에 공유한 시간표와 거의 일치하게 행사를 진행했죠. 대만과 일본의 커뮤니티들은 워낙 행사를 많이 하다 보니 기획과 운영상 노하우를 확보한 것 같더라고요.  

 

행사 시간표

6월 7일 식전행사로 오키나와 전통 환영 춤, EISA DANCE 공연이 열렸어요. 소개를 마치자마자 전통 복장을 한 공연팀이 행사장 바로 앞 길거리에 자리를 잡더라고요. 그리곤 길 가던 사람들마저 붙잡아 두는 신명난 춤과 음악,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이어진 공연에서는 오키나와 지역 가수분들이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로 노래를 부르셨어요. 나중에는 그분들의 노래에 맞춰 참가자가 다 같이 원을 그리고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본 행사만큼 흥겨웠어요. 아마 행사의 즐거운 분위기를 미리 보여준 스포일러 같은 거였나 봅니다.^^

 

EISA DANCE, 이미지 출처: 거브제로 Yutin
지역 가수 공연, 이미지 출처: 코드포재팬 Hal Seki

6월 8일 본식이 시작됐어요. 거브제로를 이끄는 사람들 중 한 명이자 이번 행사의 오거나이저였던 치하오(Chihao)가 모더레이터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밋앤핵 행사의 어젠다를 공유했고 시간표를 보여주며 행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했죠. 그리고 함께 사용할 협업 툴을 여럿 소개해주었어요. 핵MD(HackMD), 구글 스프레드시트, 텔레그램, 구글포토 위주였습니다.

 

혹시 참여형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요. HackMD는 거브제로에서 쓰는 마크다운 노트인데요. 주로 오거나이저들이 행사 전과 후 일반적인  내용을 기록하는 용도로 썼어요. 스프레드시트는 행사장에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회고를 기록하고 행사에서 나온 결과물의 저작권을 표시하는 용도로 쓰고 있어요. 텔레그램은 소통 미디어로 뒷풀이 때 많이 썼고, 구글포토에는 행사 사진을 모았습니다.

 

치하오의 모더레이션이 끝난 뒤 곧바로 참가자들이 발표를 시작했어요. 10명의 오거나이저 및 참가자가 이틀 동안 수행할 ‘해킹’ 과제를 5분 이내로 공유했습니다. 특정 지역의 문제부터 세계적인 문제까지 엄청난 범위를 아우르는 주제들이었어요.

 

‘허위 정보 공격 대응’, ‘오키나와 아동 빈곤 문제’, ‘아시아 인권 법정 시뮬레이션’, ‘프린트 친화적인 클라우드 지도’, ‘동아시아의 젠더 이슈 역사’, ‘홍콩의 범죄인인도법 또는 송환법’, ‘정부 데이터 적용법’, ‘나만의 모험 정의하기’, ‘오키나와 해변 쓰레기를 청소하는 프로젝트 TATTA’ 등이 있었습니다.

 

저도 시빅해킹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표했어요. (네, 해킹을 해킹했습니다!ㅎㅎ) 처음에는 단순히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는데요. 여러 문화권에서 온 다양한 참가자들과 함께 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직접적으로 시빅해킹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더라고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주제를 보고 와서 이야기를 나눠주었고요. 시빅해커로서 본인이 하는 일을 정의하는 과제여서 그런지, 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발표를 해야 하니 살짝 부담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제를 열어두고 진행 상황을 공유한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의 기여를 받을 수 있었어요.

 

행사 중 차려진 점심 식사

점심을 먹고 각자 프로젝트에 몰입하다가 오후 ‘짧은 발표’ 시간에 다시 모였어요. 각 국가 및 지역 이슈를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밋앤핵 행사에 동행한 닷페이스 개발자이자 한국 시빅해커 김슬 님이 한국의 시빅해킹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어요. 국회의원들이 자주 가는 맛집 목록을 만들고 이를 지도에 표시하는 ‘존맛국회’ 프로젝트와 언론사가 그래프를 잘못 그리는 사례를 모아 시빅해커들이 다시 그려보는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참가자들이 감탄을 하더라고요. 중간중간 박수도 나왔습니다. 어서 깃허브 주소를 달라는 분도 있었어요.

 

닷페이스 개발자이자 한국의 시빅해커 김슬 님의 발표, 이미지 출처: 빠띠쿱 황은미

이후 10명의 과제 수행자들이 다시 한번 진행상황을 발표한 뒤 첫날 행사가 끝났습니다. 장내를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아시아 시빅해커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꿈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게다가 이야기를 나누고 그냥 사라져버릴 내용이 아니라 조촐하게 결과물까지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꽤 뿌듯했습니다. 네트워킹을 하고 밤늦게까지 과제를 정리하니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어요.

 

6월 9일 둘째 날에는 아침부터 마지막 과제 발표를 했고, 네트워킹을 한 뒤 오후 네 시쯤 준비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습니다. 자유로운 네트워킹 시간에는 주로 서로 하는 일을 소개했고 조직이나 개인이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물색했어요. 기타 흥미로운 주제로 대만 참가자 윤천(Yun-chen)과 ‘서양 역사는 학교서 많이 배우는데 정작 내가 사는 아시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오래 나눴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또 대만과 한국에서 기혼 여성이 낙태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시아 여성 인권까지 주제를 확대해서 논의해보기도 했습니다.

 

오거나이저도, 참가자도 너무나 만족한 밋앤핵 행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오거나이저들은 “그동안 다수의 해커톤을 진행했지만 이렇게 생산적인 행사는 처음이었다. 더 자주 열고 싶다”고 했고요. 참가자들 역시 “알찬 행사였다”면서 “다음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어요. 한편 “행사 자체를 좀 더 알렸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네요.

 

집중한 뒤에는 시원한 맥주죠!

개인적으로도 시빅해커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던 행사였어요. 같은 아시아 대륙에 살지만 나라마다 너무나 다른 이슈를 안고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다양한 참가자들이 서로 다른 이슈들을 다 이해하고, 그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기술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최대한 애쓰는 모습을 보니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밋앤핵 행사 중 홍콩 참가자들이 ‘범죄인인도법안(extradition bill)’ 통과에 반대하는 집회에 가야한다며 자리를 떠났는데요. 이후 밋앤핵 오거나이저 및 참가자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홍콩 경찰이 집회를 무력 진압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한국, 대만, 일본의 시빅해커들이 참가자의 사진을 아카이빙하거나 관련 내용을 맵핑하는 툴을 공유하겠다고 나섰어요. 비록 중국과 홍콩 정부의 온라인 감시망에 걸릴까봐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참가국 전부 집회 경험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고 봅니다.

 

아시아 각국 시빅해커가 모이는 행사를 자주 열어서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인 논의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TATTA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는 유키, 이미지 출처: CC BY-SA 4.0 by Pomin Wu and attributed to Facing the Ocean Meet & Hack

사실... 행사 콘셉트에 ‘바다를 보면서’가 포함돼 있었지만 행사장은 내륙에 있었고 날씨도 매우 좋지 않아서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답니다ㅋㅋ 그렇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고민과 나름의 해결책을 듣다 보니 바다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로컬 참여자들이 다른 나라의 개발자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는 피드백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38명의 참가자가 쉴 틈 없이 리서치하고 발표하고 네트워킹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고, 또 자발적으로 시빅해킹할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협업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저도 큰 힘을 받은 행사였어요.!   

 

밋앤핵 참가자 단체사진, 이미지 출처: 코드포재팬 Mami

그럼 다음 글에서 시빅해킹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게요. 기대해주세요.




취재 및 정리 | 슬로워크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이미지 편집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