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뢰사회의 매듭을 푸는 기술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발표한 언론 신뢰도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32.3%. ‘저신뢰 사회’입니다.
사회 각 주체가 서로 믿지 못한다는 뜻이죠. 사회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의 질이 신뢰도를 좌우한다고 할 때, 디지털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이기에 유리한 조건은 아닙니다. 정보의 유통 채널이 무수히 많아졌고 양도 방대해진 한편 정보의 품질 관리는 대부분 개인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요. 이런 상황에서 최근 걷잡을 수 없이 유통되는 ‘가짜뉴스'는 사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픽사베이)
가짜뉴스는 언론, 소셜미디어, 각종 사이트 등 정보제공자가 뉴스의 옷을 입혀 의도적으로 확산시키는 허위, 거짓 정보입니다. 여기서 ‘의도’는 편향된 정치 커뮤니케이션, 트래픽 유도를 통한 상업적인 이익을 내포하죠. 특히 정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가짜뉴스는 이용자의 정치 성향과 의사결정, 전반적인 사회 질서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소셜미디어의 개인화된 알고리즘과 쿵짝이 맞으면 사용자의 정보 편식, 사회 갈등, 정치 양극화를 가속화하죠.
사회의 분열과 혐오를 조장, 확산하는 요인 중 하나가 현대 디지털 기술인 셈입니다.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의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알고리즘요.
소셜미디어는 가짜뉴스의 주요 유통 창구입니다. 가짜뉴스의 19.7%가 소셜미디어에서 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문제는 이를 운영하는 IT 플랫폼 회사들이 사람 간 연결을 통해 민주적인 공론장을 넓혀야 한다는 책무보다 이익 추구라는 목표를 우선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용자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 콘텐츠를 노출해서 광고비를 엄청나게 거둬 들이면서 ‘우리는 중간자 역할일 뿐이야’라며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앞세워서 논리를 방어할 수 있죠.
이 과정에서 알고리즘 기술은 사용자의 정보 편식을 조장합니다. 포털 사이트와 소셜미디어는 기초적인 원리마저 꽁꽁 숨긴 ‘개인화 알고리즘’으로 콘텐츠를 정렬하는데요. 덕분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광고합니다. 실상은 온라인 정보 제공자 입맛에 맞는 정보 또는 이용자의 생각과 통하는 정보만을 노출하는 거죠.
뭐, 매일 생활하기 바쁜 개인은 포털 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 들어가서 ‘내 생각과 꼭 맞는 정보만 보니 좋구나’ 싶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편향된 생각을 강화하기 쉬울텐데요. 때문에 개인이 각자 사회를 양극화하고 갈등을 심화하는 악마의 씨앗을 품게 되는 것이지요.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의 예시를 들어볼까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외부 기관이 5천만명의 페이스북 계정 정보를 불법 취득했고 이를 이용해 가짜뉴스를 노출했습니다. 사건이 알려지자 페이스북은 ‘우리는 플랫폼, 일개 기업일 뿐’이라고 초기 대응을 했습니다. 정치 이벤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책임을 피하려 했죠. 약 23억명이 매달 페이스북에 접속하는데, 전부 미지의 알고리즘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고 정보를 편식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구글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른 플랫폼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신뢰 기술의 탄생
사회 갈등을 조장하려고, 가짜뉴스를 실어 나르려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아니죠. 온라인에서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가능하면 투명하고 민주적인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개발, 활용합니다. 가짜뉴스 확산이 아니라 서로 믿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죠. 신뢰 기술의 탄생입니다.
해외에서는 언론계의 자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프랑스 르몽드는 독자들이 언론사에 직접 팩트를 체크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 메신저에 ‘팩트 체크 봇’을 도입했고요. 영국 BBC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대상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기사의 진위를 알리기 위해 ‘리얼리티 체크’ 팀을 신설했죠. 언론이 기술을 도구삼아, 팩트에 기반한 깊이있는 기사를 작성하고 나아가 정보 시민을 육성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국내에서는 슬로워크가 신뢰 기술을 개발합니다. 대표적으로 뉴스트러스트 알고리즘과 메르스 확진자 동선 인포그래픽, 대한민국 뉴스소비 지도 프로젝트가 있죠. 슬로워크의 사업부이자 협동조합인 빠띠 역시 신뢰 기술로 서로 믿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1. 뉴스트러스트 알고리즘은 최대한 다양하고 정확한 의견을 담은 기사를 추천, 배열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슬로워크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저널리즘 가치에 기반을 둔 뉴스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해 뉴스 배열에서 의견의 다양성을 담아내기 위해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죠. 현재 포털이나 소셜미디어는 개인 맞춤형 뉴스 추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데, 악용 및 도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아주 기본적인 원리조차 공유하지 않습니다. 또 맞춤형이기 때문에 개인의 치우친 생각을 강화할 수 있죠.
(형태소 분석기)
반면 뉴스트러스트 알고리즘은 오픈 소스입니다. 개발할 때 사용한 자연어 처리, 형태소 분석, 클러스터링 등의 기술을 깃허브에 소스 코드까지 자세히 공개해서, 누구나 볼 수 있고 가져다 쓸 수 있죠. 분산처리 워커, 도커 이미지 빌드 스크립트 등도 포함했습니다.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도 최대한 자세히 공개했죠. 기사의 길이, 인용문 수, 제목 길이, 제목의 물음표와 느낌표 수, 수치 인용 수, 이미지 수, 평균 문장 길이, 제목의 부사 수, 문장당 평균 부사 수 등 11개 요인을 우선 적용했습니다. 포털이나 소셜미디어도 해당 기준을 사용하긴 하는데 방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거든요. 뉴스트러스트 프로젝트에서는 하나하나 상세히 공개합니다. 예를 들어 ‘기사의 길이’의 경우 얼마나 길어야 하며 길이에 따른 기사 랭킹은 어떻게 매기는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죠. 뉴스트러스트 알고리즘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향후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알고리즘을 논의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 서울특별시와 함께 제작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 동선 인포그래픽도 신뢰 기술이자 신뢰 디자인입니다. 메르스와 같이 전염 확산 우려가 높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부정확한 정보가 온라인에 퍼지면 사회 혼란을 초래하기 쉽죠.
(메르스 확진자 동선 인포그래픽)
이때 정확한 정보를 보기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시각 자료는 사회 질서와 신뢰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2015년 6월 슬로워크가 만든 메르스 확진자 동선 인포그래픽은 그런 역할을 했죠.
3. 대한민국 뉴스소비 지도 프로젝트는 슬로워크와 미디어오늘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신뢰 기술입니다. 뉴스가 우리 가치관,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의 뉴스 생산과 유통, 작동 방식을 살펴보고 국민의 뉴스 소비 실태를 조사한 자료를 보기 쉽게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소비자가 사회 맥락 속에서 본인이 뉴스 소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주체적으로 소비 패턴을 조절할 수 있는 기회를 주죠. 작업이 모두 끝나면 또 알려드릴게요^^
(대한민국 뉴스소비 지도 캡처)
빠띠.xyz는 온오프라인을 넘나 드는 ‘광장’입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이슈와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간을 보장해주고, 이것이 오프라인 행동으로 연결되게 만들죠. 가브크래프트는 일상에서 웹을 통해 누구나 쉽게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는 정치 플랫폼입니다. 타운홀은 실시간 투표, 제안, 응원 등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와 미팅을 만들 수 있는 토론 플랫폼입니다.
민주주의 서울은 서울시민이 지역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토론하며, 서울시와 시민, 시민과 시민이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지역 기반 정치 플랫폼이죠. 더불어 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시민의 제안을 발굴하는 시민제안 워크숍, 정책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서울시가 묻습니다’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공감수를 얻은 시민제안의 경우 ‘시민토론’이라는 공론장을 열어 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역시 곧 오픈 소스로 공개해서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민주주의 기관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슬로워크의 이메일 마케팅 솔루션 스티비는 소비자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이메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최근 스팸메일 모니터링 및 사용 제한 기술을 내놓았죠. 후에 좀더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네요.^^
(언스플래시)
슬로워크는 앞으로도 신뢰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확산시키려고 해요. 기술은 허위 또는 편향된 정보를 퍼뜨리는 데 부역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 동의하신다면 당신은 이미 슬로워크의 파트너입니다.^^ 저희와 함께 기술을 활용해 믿을만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걸음을 한발자국씩 내딛어 보아요.
정리 | 슬로워크 오렌지랩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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