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제 잘못입니다”
[아야프에서 만난 사람] 대만 디지털 특임장관 오드리 탕(唐鳳, Audrey Tang)
1. 할&나오 인터뷰: 일본 사회를 더 낫게, 시빅해킹 비영리단체 '코드 포 재팬' |
청년허브가 마련해준 장소에서 인터뷰의 주인공을 기다렸어요. 주인공은 대만의 디지털 특임장관 오드리 탕(唐鳳, Audrey Tang)이었습니다. 이윽고 그가 들어와 악수를 청했는데요. 아우라에 이끌려, '물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묻고 답을 들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오드리 탕은 슬로워크 블로그 '팀 버너스 리와 오드리 탕의 정부기술'에서도 다룬 적이 있어요. 오드리는 원래 천재 해커이자 사회활동가, 오픈소스 개발자, 애플의 컨설턴트였는데, 대만 정부가 2016년 디지털 장관으로 특별 임명했어요.
이 걸출한 인물을 아야프에서 만났습니다. 마침 차이잉원(蔡英文, Cài Yīngwén) 대만 총통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연임에 성공한 직후여서 축하의 말을 건네며 인터뷰를 시작했어요. 승리한 소감을 들으려고 했는데, 그보다 연임 덕분에 더 잘할 수 있게 된 일을 열정적으로 늘어놓는 모습에 감탄했네요.
차이잉원 총통이 연임에 성공했어요.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저희는 덕분에 4년짜리 오픈 거버먼트 액션 플랜(The National Open Government Action Plan, 열린정부를 위한 액션 플랜)을 발표할 수 있게 됐어요. 대만은 열린정부파트너십(OGP) 회원국으로서 일정 주기로 계획을 발표해요. 다른 회원국들은 보통 2년 계획을 세우는데 대만은 총통의 비전을 기반으로 신뢰도 높은, 새로운 모델을 내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혁신이라고 봅니다.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방법론을 OGP에도 공유하려고 해요.
언제쯤 발표하실 계획인가요?
두 번째 집권기가 시작되는 5월 말입니다.
열린 정부 정책을 좀 더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게 돼 더더욱 축하드려요. 그런데 민간에서 컨설턴트, 시빅해커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정부 관료가 된 과정이 궁금해요.
차이잉원 정부가 디지털 특임장관직을 만든 의도를 먼저 말씀드릴게요. 당시 대만 경제는 반도체 산업에 크게 의존했어요. 미디어텍(MediaTek) 등 대기업이 이끄는 하드웨어 산업이 전체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었죠. 하지만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던 소프트웨어 기반 스타트업, 소셜섹터 영역과의 차이(gap)가 매우 컸습니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산업의 언어와 문법을 이해해야만 했어요. 경제를 보는 산업 간 관점의 차이와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차이잉원 정부에게 엄청난 위협이 됐거든요.
대만 정부는 '통역가'가 필요했던 거군요. 산업과 산업, 산업과 정부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요.
네. 총통은 사실 저에게 적임자를 찾아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다들 창업에만 관심이 있었죠. 결국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애플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그동안 시민들을 대상으로 저에 대해 무엇이든 물어봐도 좋다고 온오프라인 창구를 열어두었어요. 또 디지털 장관이 무슨 일을 하면 좋겠는지 의견을 구했어요. 한 달 뒤 정리해보니 세 가지 조건이 나오더군요. 이를 정부에 제안했는데 받아들여져서 장관직을 맡게 됐습니다.
정부를 위해서가 아닌, 시민을 위해서 정부와 함께 일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세 가지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첫째 급진적인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입니다. 제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 내용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조건이에요. 둘째 업무 지역의 독립성(Location Independence)입니다. 시민들은 장관인 제가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어요. 셋째 자발적 결사체(Voluntary Association) 조직입니다.
정부 조직인데 자발적 결사체요?!
네. 사람들은 제가 다른 행정부서와 긴밀하게 협업하기를 원했어요. 자발적 결사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다른 부서에서도 누구나 와서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12명 넘는 타 부서 사람들이 디지털 부서로 파견을 와서 수평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4년이 지난 지금, 대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소셜섹터 조직, 인권단체가 대만으로 많이 와요. 예전엔 ASEAN 지역 중 홍콩, 방콕으로 많이 갔거든요. 지금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들이 대만으로 많이 와요. 국경없는 기자회, 오슬로자유포럼이 대만에 사무소를 차렸어요. 민간 기업 유치도 했어요. 구글이 대만 하드웨어 업체 HTC를 인수하면서 들어왔고요. 마이크로소프트도 대만 연구센터 인력을 10배 늘렸어요.
개인적인 생각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굉장히 혁신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일반적으로 민간 영역이 훨씬 더 혁신적이라고 생각하죠. 저도 4년 전에는 이렇게 말 못 했을 거예요.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하는 위계적인 조직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환경이 달라지면 조직도 달라질 수 있더라고요. 저처럼 리스크를 기꺼이 감당하는 장관(책임자)이 함께 일하고, 비영리 시빅해킹 단체 거브제로처럼 리스크를 감수하는 조직과 자주 교류하니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어요.
장관으로서 시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벌인 일이 있나요?
연례 대통령배 해커톤(Presidential Hackathon)이요. 일반적인 해커톤은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데 이건 3개월 동안 진행해요. 매년 100명 넘게 참가하고요. 우승 팀을 다섯 팀 뽑는데, 수여하는 트로피가 영상 프로젝터라는 점이 독특해요. 전원을 켜면 차이잉원 총통이 프로토타입 제작을 지원하고 관련 정책을 1년 안에 마련하겠다고 약속하는 영상이 재생됩니다. 우승팀들은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유관기관에 가서 해당 영상을 틀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협조를 요청해요.
해커톤에서 탄생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관련 정책을 마련한 사례를 말씀해주세요.
'원격의료(Telemedicine)'가 있어요. 대만의 주요 섬과 멀리 떨어진 섬들에서는 사람들이 아프면 헬리콥터를 요청해요. 지역 간호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헬리콥터 사고가 한번 크게 났어요. 불안과 불신이 커져서 사회 문제가 됐죠.
그러다 해커톤에서 한 팀이 "고화질 영상으로 핼리콥터 운영조직과 주요 섬의 전문의, 그리고 지역 간호사를 연결해 환자나 환자 가족 앞에서 삼각통신을 하자. 여기서 헬리콥터를 띄울지 말지, 안 띄운다면 치료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이 팀은 우승했고 정부는 '전문의가 원격으로 영상을 통해 간호사를 관리, 감독할 수 있다'고 정책을 바꾸었어요.
오드리 탕의 기술 철학
정부 관료가 되어서도 기술과 시민 사회의 관계를 깊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오드리 탕에게 시빅테크(Civic Tech)는 무엇인가요?
시빅테크는 정치적인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거버넌스를 포함해, 시민이 시민의 영역에서 시민의 힘을 키우기 위해 함께 만들어나가는 기술이에요. 새로운 개념도, 첨단 기술을 활용한 무언가도 아니에요. 다만 고대 그리스 때부터 지금까지 진화했죠.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석조 투표 도구로 재판장을 뽑았어요. 시민들이 도구를 만드는 방법과 사용하는 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시빅테크입니다. 이후 프랑스와 미국 시민들이 혁명을 통해 얻어낸 국회의원 선거 제도도 시빅테크예요. 왕이 아닌 시민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컴퓨터 기반의 첨단 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잖아요. 특히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이미 일상에 스며들었고 앞으로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텐데요. 선구자로서 AI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용어부터 짚고 갈게요. 저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조력지능(Assistive Intelligence, 이하 AI)'이라고 해요. AI는 사회를 거들뿐이고, 사회를 규정하는 새로운 표준이나 규범이 되지 않을 거예요. 사회의 규범에 순응할 때에만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만들어질 테죠. 비서처럼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되, 인간이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하면 해고될 거예요. 네, AI는 믿음직해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AI)에게 사회적인 책임감을 요구하는 게 맞을까요?
그럼요. 기계가 자동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린 후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당신이 늘 그랬잖아요"라고 답하면 틀린 거예요. AI는 의사결정의 이유를 설명할 의무, 편견이 보인다면 이를 설명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못한다면 신뢰해서는 안돼요. 간단합니다.
AI가 이슈인 만큼 데이터의 가치도 치솟고 있어요. 말씀하신 책임감과 신뢰가 데이터 분석과 사용에는 어떻게 적용될까요?
대만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공기 질을 측정해요. 학생들도 참여합니다. 다른 사람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데이터를 측정해서 큐레이션하고 쓸 만한 것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의 데이터와 연관시키는 방법을 학교 수업으로 배우거든요. 이후 원하면 데이터 연합 커뮤니티 LASS에 직접 측정한 공기 질 데이터를 등록해요. LASS는 상황에 따라, 예를 들면 선거 기간에 누구도 데이터를 임의로 바꿀 수 없도록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시민들은 해당 데이터를 가지고 정부와 거래를 해요.
시민들이 스스로 측정한 공기 질 데이터를 가지고 정부와 협상을 한다는 말씀인가요?
네. 사람들이 환경부보다 크라우드 소싱 데이터를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실시간으로 측정되고, 데이터 양도 훨씬 많아서요. 그런 다음 시민들은 환경부에 '이제 같이하자'고 손을 내밉니다. 정부는 시민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협력해야 하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시민 IoT(Civil IoT)' 입니다. 환경부는 거래의 조건으로 시민들이 산업지역 및 산업 단지의 공기 질을 측정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주어야 해요. 정부와의 협상 전에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공기 질을 조사할 수 없었던 곳이지요.
풀뿌리 데이터 연합들과 정부와의 협상, 시민들이 데이터 주권을 갖는 방법 중 하나겠네요.
시민이 정부를 맹목적으로 믿을 필요가 없고, 정부도 시민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되는 방법입니다. 믿을만한 데이터는 결국, 시민이 참여해서 만들어내는 데이터뿐이라고 생각해요.
오드리 탕이 말하는 '참여'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게요. 시민의 참여가 신뢰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시는 거죠. 그렇지만 시빅테크든, AI든 기술과 친하지 않은 시민이 있다면 전부 소용없지 않을까요?
좋은 기술자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져다줍니다. 사람들을 오라고 하지 않아요. 즉 아무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기술을 만들면 시민의 잘못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잘못입니다. 저의 멘토이자 엑셀 스프레드시트 시스템 발명가 댄 브리클린이 좋은 예가 되겠네요. 그는 사람들이 프로그래밍할 필요 없이 숫자와 공식만 입력하면 결과가 나오고 숫자를 업데이트하면 결과도 바뀌어 나오는 시스템을 만들어 PC에 적용했어요. 지금은 구글 스프레드시트로도 구현돼, 협업 도구로 쓰이죠. 기술자는 실사용자를 공동 제작자로 생각해야 하고, 모두가 쉽게 어떤 용도로든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합니다.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요?
UN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2020년 안에 모든 사람이 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합의한 바 있어요. 국가가 모든 사람이 지불할 수 있을 만한 값에, 적정한 속도의 접근 가능한 인터넷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UNGC(UN글로벌콤팩트)의 SDGs 9.c 조항으로도 있고요.
대만 정부와 시민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나요?
대만에서 인터넷 접근성은 인권의 문제고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수도, 전기 인프라처럼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실현에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게 만들고자 해요. 현재 대만 국민 중 2%가 인터넷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산 지대에 사는데요. 정부는 주기적으로 헬리콥터를 보내, 이 지역도 곧 인터넷에 연결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만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제 잘못이고 제 책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드리 탕의 개인 목표를 물었는데 SDGs의 17번 목표와 같다고 했어요. '이행수단 강화 및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활성화' 중 '믿을만한 데이터', '파트너십 활성화', '지식 공유, 협업, 기술 접근성 제고' 내용이 포함돼 있어요. 그러니까... UN의 목표가 개인의 목표인 셈이죠.
정말 범상치 않다고 생각할 때쯤 그는 "이번 인터뷰 스크립트를 3일 안에 당신에게 공유할 것이고, 이후 일정기간 안에 대만 정부 깃헙 아카이빙 페이지를 통해 대중에게 완전 공개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약속을 지켰습니다.
오드리 탕의 디지털 장관으로서의 면모, 선구자로서의 기술 철학, 시민 사회 참여를 향한 생각까지 들어보았어요. 그는 말로만 열린 정부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열린 정부를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서서 원칙을 세우고 해야할 것들을 실행하고 있었어요. 정부 관료로서,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모든 내용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만 디지털 기술 도구를 최대한 선용하는 지혜로운 디지털 리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5월에 내놓을 대만의 '열린 정부 장기 계획'을 기다려봅니다.
인터뷰 및 정리 | 슬로워크 책임 테크니컬라이터 메이
이미지 | 슬로워크 책임 디자이너 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