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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

일본 사회를 더 낫게, 시빅해킹 비영리단체 ‘코드 포 재팬’

[아야프에서 만난 사람] 코드 포 재팬(Code for Japan) 할 세키, 나오 묘슈

1. 할&나오 인터뷰: 일본 사회를 더 낫게, 시빅해킹 비영리단체 '코드 포 재팬' 
2. 불런트 오젤 인터뷰: "모든 시민을 포용하는 AI를 지지합니다" 
3. 오드리 탕 인터뷰: "대만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제 잘못입니다"

2011년 3월은 일본에게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일본 동해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고 뒤이어 14m가 넘는 초대형 해일이 일본 동해안에 발생했어요. 대규모 지진과 해일은 후쿠시마 원전 수소 폭발 사고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고 이후 확인 되지 않은 정보가 괴담처럼 퍼져나갔어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체 모를 두려움이 스멀스멀 생겨났습니다. 

할이 제작에 참여한 sinsai.info. 지금은 해당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할

그때,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오픈소스 커뮤니티 '오픈스트리트맵 재팬 (OpenStreetMap Japan)'이 생겼어요. 원전 사고와 관련된 정확한 지식 및 정보와 출처를 크라우드 소싱하는 웹사이트 'sinsai.info'를 만들었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죠. '코드 포 재팬 (Code for Japan)'의 창립자이자 현 대표 하루유키 세키(이하 할)도 웹사이트 제작에 참여했어요. 그는 비슷한 시기 생긴 오픈소스 커뮤니티 '핵 포 재팬 (Hack for Japan)'에서도 활동하면서 해커톤 개최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 기여했습니다. 핵 포 재팬 역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재를 위해 개발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였어요. 그가 시빅해킹에 처음 발을 내딛은 계기였습니다. 

할은 사람들이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공유해서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국가 재난 이후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어서 생길 수 있는 사회적인 불신을 오픈소스 커뮤니티 활동으로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나아가 규모감 있고 안정적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빅해킹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코드 포 재팬 대표 할이 아야프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2013년 10월, 할은 20명의 구성원과 함께 정식으로 코드 포 재팬을 열었어요. 7년이 지난 지금 30명의 구성원이 코드 포 재팬의 2세대를 이끌고 있어요. 기존 멤버 중 할만 이사회 구성원으로 남았고 일부는 커뮤니티 컨트리뷰터로 활동 중이에요. 커뮤니티 컨트리뷰터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찾아서 커뮤니티에 활발하게 기여하고 있는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곧 3세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하는데요. 나오 묘슈(이하 나오)는 3세대 구성원 중 가장 주목받는 커뮤니티 컨트리뷰터입니다. 그는 현재 글로벌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할 대표는 나오를 코드 포 재팬의 '떠오르는 샛별'이라 불러요.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고 이 일을 재미있어 하죠.

코드 포 재팬의 (왼쪽)나오와 할

제1회 '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리서처 펠로우십 (AYARF, 이하 아야프)'에 연사로 참여하고자 서울을 찾은 할과 나오를 만날 수 있었어요. 코드 포 재팬의 구체적인 활동과 둘의 개인적인 소회도 들어보았습니다. 

메이(이하 '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FtO 밋앤핵 행사에서 만난 뒤 이렇게 서울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아야프 워크숍은 어땠나요? 챗봇을 빌드하는 협업 워크숍을 했다면서요? 

나오(이하 '나') 네. 이제 챗봇은 개발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다만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챗봇을 만들고 데이터를 채우는 것은 협업이 필요한 일이지요. 예를 들어 대만의 시빅해킹 커뮤니티 'g0v.tw(이하 거브제로)''Cofacts(코팩트)'라는 크라우드 사실 관계 확인 챗봇을 만들었어요. 대중이 뉴스의 출처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크라우드 지식 소싱 챗봇이에요. 온라인에서 허위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더 많은 사람을 이해관계자로 끌어들여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누구나 이런 챗봇을 만들고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오가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성공했네요! 이번 워크숍에서 '한국 여행 가이드'를 주제로 한 챗봇에 15명의 참가자가 1시간 만에 81개의 질문-답변 세트를 만들었으니까요. 쉬워보이지만 열린 장을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할이 코드 포 재팬을 만들게 된 이유도 비슷할 것 같아요. 할, 코드 포 재팬은 어떤 조직인가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고, 같이 만들어 나가는 네트워크예요. 2011년 시빅해킹을 접한 이후 '디지털 기술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하면 시민들이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혼자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사람의 힘은 약하겠지만 누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개방형 네트워크가 생기고, 이 네트워크들이 모여서, 개개인이 더 잘 사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미션을 정한 이유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을텐데요. 커뮤니티를 구성한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맞아요. 시빅해킹 커뮤니티가 일본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거의 의무감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지만 실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어요. 2012년 뉴욕에서 열린 Personal Democracy Forum에서 그 기회를 얻었지요. '코드 포 아메리카 (Code for America)'의 커뮤니티 기획 총괄 캐서린 브레이시(Catherine Bracy)를 만나 코드 포 재팬을 시작하면 어떨지 물으니 대번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Why not? (좋지!)" 일본으로 돌아와서 6월에 곧바로 킥오프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단 한 마디였지만 할에게는 큰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군요. 킥오프 워크숍은 잘 되었나요?

다양한 곳에서 약 50명이 왔어요. 코드 포 아메리카를 아는 사람들, 공공기관 종사자 중 시빅해킹에 관심 있는 사람들, 민간 기업 종사자들, 오픈소스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있었죠. 구상은 제가 했지만 참가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야 했어요. 그래서 워크숍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비전은 무엇인지, 어떤 것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물었어요. 당시 20명 정도가 참여의사를 밝혔고요. 운영, 마케팅, 로컬 커뮤니티 담당자 등 팀을 꾸렸고 규칙을 만들어서 정식으로 비영리단체 코드 포 재팬을 열었습니다. 

그렇군요. 현재는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고, 일본 전역에서 총 80개 커뮤니티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규모가 엄청 커졌는데요. 각 커뮤니티가 어떻게 소속감을 느끼면서 활동하는지 궁금해요. 

코드 포 재팬 서밋, 이미지 출처: 코드 포 재팬

우선 본사는 로컬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규제하거나 감독하지 않아요. 대규모의 예산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나, 지역 정부와 컨설팅을 하는 등 비즈니스를 할 때만 관여해요. 다만 1년에 한번 열리는 코드 포 재팬 서밋, 2개월에 한 번 열리는 해커톤에 모두 모여서 '우리는 코드 포 재팬'이라는 느슨한 소속감을 느껴요. 

할이 이야기한 제도적인 측면 외에도 개인적으로 이미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며 활동하고 있어요. 대학생 때 경험 덕분이에요. 2011년 사회학 전공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시기 토호쿠에서 큰 지진이 났어요. 저희 학교에서 토호쿠의 지역 커뮤니티를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학생들을 자원봉사자로 보냈습니다. 저도 여기 참여하면서 커뮤니티를 다시금 바로 세우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사회학 전공으로서 학술적으로 공부하는 것 외에도요. 졸업 후 일을 시작하면서는 이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잊어 버렸는데 코드 포 재팬에서 활동하면서 기쁨을 다시 찾고 있어요. 

나오는 본인의 기쁨과 커뮤니티 기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네요. 멋집니다. 커뮤니티 자랑을 좀 더 해주세요. 시민들을 위해 했던 활동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시즈오카의 스소노(Susono) 시의 커뮤니티가 정부 관계자와 일반 시민을 모아 크라우드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을 향상시키는 해커톤을 열었어요. 여기서 지역 정부 FAQ 챗봇을 만들었답니다. 시민들이 라인 메신저로 지역 정부에 궁금한 점을 물었을 때 이것이 챗봇에 등록된 질문과 답변이라면 곧바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요. 도쿄 대학교와 공동 연구도 하고 있어요.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정부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학계와도 활발하게 연계하고 있지요. 

커뮤니티 활동 외에 정부와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가요? 

정부를 대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어요. 공무원들의 데이터활용 KPI(핵심평가지표)를 정립하고 워크숍을 진행해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구글 애널리틱스, 지리정보시스템의 기능을 활용하는 법을 전수하고, 조금 더 높은 레벨에서는 정부 데이터를 민간에 양질로 공개하는 방법도 교육합니다.

시민, 기업, 정계를 연결해 사회 변화를 만드는 코드 포 재팬의 활동, 이미지 출처: 코드 포 재팬

코드 포 재팬은 글로벌 시빅해킹 커뮤니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잖아요. 코드 포 재팬 서밋에 코드 포 아메리카 구성원을 초청하기도 했고, 오키나와에 아시아 시빅해커들을 불러 모아서 밋앤핵 행사를 열었고, 얼마 전에는 대만에서 열린 밋앤핵에도 다녀왔어요. 이런 글로벌 활동들은 코드 포 재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오키나와, 대만 밋앤핵에 다녀왔는데요. 주요 컨트리뷰터로서 글로벌 시빅해킹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어요.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일본 아닌 나라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문제를 겪는 것을 보고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얻으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더 가까이서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있어요. 오키나와 FtO 밋앤핵에 홍콩 시빅해커 커뮤니티도 참여했는데 그들도 홍콩 시위에 합류했거든요. 그때 실시간 상황을 단체 메시지에서 접하면서 같이 화도 냈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각 나라 시빅해커들의 솔루션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뉴스로 접하는 것보다, 마치 일본이나 저의 문제인 것처럼 더 가깝게 다가왔어요.

밋앤핵 참가자 단체사진, 이미지 출처: 코드포재팬 Mami

커뮤니티를 조직화하는 서로 다른 방법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 일본, 대만 서로 다 다르더라고요. 거브제로에서 2개월에 한 번 해커톤을 여는 것을 보고 저희도 따라하고 있고요. 코드 포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개발자가 아닌 시빅해커들이 모여서 워크숍을 하는데, 코드 포 재팬에서도 배워서 하고 있어요. 

정말 에너지가 넘쳐요. 마지막으로 두 분 모두 생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시잖아요. 힘들지는 않으신지,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참여합니다. 저의 능력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최대한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요. 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요. 시빅해킹이 그런 힘을 발휘하는 것을 쭉 보아왔어요. 제가 이 일을 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시작한 것인데 오히려 힘을 받고 있는 것이죠. 이제는 저 이후의 세대가 코드 포 재팬을 이끄는 것을 보고 싶어요. 


코드 포 재팬의 커뮤니티 활동 및 정부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자세히 살펴봤어요. 도시별로 커뮤니티가 활동하다보니 지역 정부 및 교육기관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 정책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시빅해킹이 시민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는 방법은 직접 솔루션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더 나은 정책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코드 포 재팬은 그 일을 7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할과 나오는 이 사회 변화를 만드는 네트워크를 여전히 에너지 넘치게 조직화하고 있어요. 한 명, 하나의 조직은 약하지만 네트워크가 모이면 강하다는 할의 믿음이 코드 포 재팬을 통해 지속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커뮤니티가 이끄는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인터뷰, 정리 | 슬로워크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