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으로 전해지던 가슴 아픈 시간이 지나가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폭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눈물로 얼룩진 공허함만이 남았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슬로워크에서 제작한 4.16 달력은 가슴에 새겨야 하는 어느 날에 대한 기억입니다. 휴일도 기념일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화려한 수식도 없이 몇 마디 문구와 날짜, 그리고 흰 여백으로 가득한 불편하고 불친절한 달력입니다. 이 달력을 바라보며 맞이하게 될 하루하루가 조금은 가슴 아플지도 모르지만, 흘러간 것들은 기억하고, 앞으로의 나날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젝트 진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를 이야기 하며 …
‘세월호’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것들이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하였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매 순간마다 그들의 슬픔에 더 큰 슬픔을 더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때문에 ‘세월호’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상징성을 가진 몇 가지 요소들을 통해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무게를 슬로워크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습니다.
제목
[ 4.16 ]
달력의 제목을 '4.16'으로 정한 이유는 오롯이 그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4.16'이라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그 시간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강하게 각인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 기억하라 그리고 살아라 ]
많은 요소들을 배제한 이 작업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나희덕 시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시인께서는 80년대에 발표한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라는 시를 달력에 싣는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리고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라는 시의 제목을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게 변형하여 ‘기억하라 그리고 살아라’라는 부제를 지어주셨습니다.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덩굴이 나무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벌들이 꽃에게로 접근하고 있다
아무도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모든 것은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하라,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도, 우리조차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지 못했으나
덩굴이 나무를 정복하듯이
꽃이 열매를 맺듯이
마침내 이루리라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의 숨은 눈을 통하여
마침내 붉은 열매가
우리를 넘어서 날아오를 때까지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나희덕 | 시집 ‘뿌리에게’ 에서
표현방법
[ 표지의 ‘4.16’ 양각처리 ]
표지의 '4.16'은 촉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양각 처리하여 시간이 지나도 ‘4.16’을 가슴에 새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 모든 페이지의 ‘4.16’ ]
1월부터 12월까지 동일하게 들어가는 ‘4.16’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2015년의 하루하루도 그날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 4월 16일 ]
이 달력에서 4월 16일은 지워져 있습니다. 이는 ‘4.16’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아픔이 극복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 노란색 종이배 ]
또한 4월에는 노란 색지로 만든 ‘종이배 접기’를 삽입하였습니다. 접지 순서대로 종이배 접는 방법이 그려져 있는 노란 색지는 이 달력을 사용하게 될 모든 사람들이 종이배를 접으며 한뜻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합니다.
기본 구성품
225x240mm 사이즈의 달력(펼침면 225x480mm) / 종이배를 접을 수 있는 노란 색지(4월에 삽지되어 있음) / 봉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안타깝게 스러져간 소중한 생명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미약하지만, 우리의 작은 아이디어가 모여 잊혀서는 안될 어떤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는 큰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우리들의 시간을 조용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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