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공을 차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골목길, 군데군데 모여 앉아 소꿉장난이랑 공기놀이를 하는 여자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던 골목길.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그곳에 이제는 자동차가 들어섰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차 빼라”는 소리로 아침이 시끄럽다. 차 댈 데가 정해지지 않아 물 양동이 2개로 자리를 먼저 잡아놓느라 이웃끼리 감정 상하는 일도 생긴다. 타이어에 자물쇠 쇠고랑을 채워 집 앞에 ‘떡’ 하니 자리 찜을 해놓기도 한다.
새벽에 ‘차 빼라’ 하며 난리치는 일도 싫고, 오래 사용한 차를 바꾸자니 목돈 몇 천만 원이 들어가는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설현정 씨는 그 참에 ‘차 나눠 타기 운동’을 하는 ‘차두레’ 회원이 되었다.
‘차두레’는 독일의 카 셰어링 사례를 보고 온 몇몇 사람들이 작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낸 차 나눠 타는 모임이다. 도시 생태공동체 마을을 만들어가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용기 있는 실험이었다. 2007년 10월 7일 첫 승차를 시작으로 올해 7월에 제3기가 시작됐다. 매년 7월에 회원갱신을 하는 이 모임은 연 20만 원 회비를 내면 1년에 9인승 승합차 한 대를 6가구가 번갈아 나누어 탈 수 있다. 단 기름 값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설현정 씨는 지난해 가을에 제2기에 합류했다. 일곱 살 난 아들을 둔 그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놀만한 공간도 없고, 집을 나서면 지나는 자동차에 행여 다칠까봐 늘 마음에 걸렸다. 물론 자동차 한 대를 운행하면서 드는 비용도 부담이 되고 아깝기도 했다.
그는 주로 가족여행이나 춘천 시댁에 다니러갈 때 이용한다. 거의 한 달에 세 번 꼴이다. 남편도 만족한다. 회사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고 마을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니 차를 사용할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차두레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주로 휴가나 명절 때, 단체회원인 성미산학교는 평일 소규모 학생 체험행사 때 사용한다.
그가 처음 차 나눠 타기를 하겠다고 선뜻 나섰을 때, 마음 한 편엔 이용이 순조롭지 않고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내 차처럼 편안하고 간단했다. 계속 사용하면서 차 나눠 타기가 불편한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가장 편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여섯 가구가 차 한 대로 불편없이 나눠 탄다
차 나눠 타는 일이 보기에 흥미가 있고 의미도 있어 보이지만 대부분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게 쉽지 않은 듯하다. 여섯 가구가 자동차 한 대를 사용하는데 과연 겹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을지가 제일 걸리는지 처음 묻는 말이 “그거 필요할 때 정말 탈 수 있어요?”다. 처음 시작할 때 설현정 씨도 그 점이 가장 걱정이었다. 하지만 첫 예약 때 별 일 없이 예약이 되었고 시댁에 편안하게 다녀오고 난 후 “와! 정말 되네.”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겹치면 양보하기도 하고 다행히 일정이 빗겨 정해지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차두레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모든 것이 원시적인 운영방식이었다. 운행일지, 연락, 주유 기록 등 모든 것을 수기 장부에 기록했고, 이용할 때마다 총무에게 전화하여 예약하거나 주유나 청소 수리에 관해 말로 보고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FMS라는 카 셰어 관리시스템 단말기를 장착하면서 이용과 관리가 훨씬 쉬어지고 간단해졌다.
설현정 씨는 춘천 시댁에 가려면 먼저 일주일 전에 차두레 FMS 홈페이지에 예약을 한다. 당일엔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차고지에 가서 차를 가져온다. 출발할 때 단말기에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차를 운행한 거리를 단위로(km당 300원) 사용한 휘발유 가격을 계산할 수 있고, 중간에 주유를 하면 주유 버튼을 누르고 주유 가격을 입력하면 나중에 그 영수증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돌아와서는 시동을 끄는 순간 사용시간이 끝난다. 집에 짐을 내리고 남편은 차고지에 차를 세워놓고 차안의 쓰레기를 줍거나 간단한 청소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그가 처음 차 나눠 타기를 하겠다고 선뜻 나섰을 때, 마음 한 편엔 이용이 순조롭지 않고 불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내 차처럼 편안하고 간단했다. 계속 사용하면서 차 나눠 타기가 불편한 방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가장 편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차를 빌려 타는 것과 나눠 타는 것이 뭐가 다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계산기를 두드려볼 때 그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처럼 날이 뜨거울 땐 우리집 7살 아들이 걱정돼요.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 아이가 노인이 되고, 손자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구가 너무 뜨거워져 땅을 디딜 수 없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지.”
환경을 생각하며 보통과 다른 생활방식을 해보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뜨거운 지구에 대한 환기를 시키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출발할 때 단말기에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차를 운행한 거리를 단위로(km당 300원) 사용한 휘발유 가격을 계산할 수 있고, 중간에 주유를 하면 주유 버튼을 누르고 주유 가격을 입력하면 나중에 그 영수증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
마을에서 지구를 구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마을에서 하는 작은 실천이라고 겸손해 하는 설현정 씨는 사실은 성미산지킴이 운동시절부터 7년 간 성미산마을 만들기를 함께 해온 오래된 활동가다. 하지만 나이 20대 말 즈음 ‘성미산’에 참여할 당시에도 그는 막내였고, 30대 초반의 지금도 역시 막내다. 처음에 이곳에 우연히 이사를 와 아는 분을 통해 성미산지킴이 운동을 시작했지만 노동조합활동을 해온 그에겐 마을을 지키고 마을을 만드는 일이 그리 큰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환경운동이나 지역운동이 남의 일 같았다.
성미산지킴이 대책위 간사를 하면서도 ‘성미산이 뭐 그리 중요하기에 저렇게 별나게 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미산을 살펴보는 모니터 활동을 위해 그는 산에 올라가 다니면서 자연, 나무, 햇빛, 새소리가 자신을 위안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적인 게 아니라 가슴으로 피부로 느껴지는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삶에서 나와 다른 인종들이 하는 것이 별나고,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하면서 환경을 지키는 일이 일상으로 들어오고 이렇게 안 하면 불편해지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사람들이 그를 바꿨다.
요즘엔 마을의 9가구와 함께 녹색가정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다. 탄소발생을 줄여서 성미산 하나를 만드는 효과를 내보자는 에너지 시범마을 만들기 활동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그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한 달에 두 번, 전기와 가스 사용량을 확인해서 얼마를 줄이는지 가늠해보는 에너지 절약 소모임 운동이다. 환경정의로부터 도움을 받고 진행하는 것으로 실적이 좋은 가정엔 상도 있다. 그의 아들도 에너지 절약이 생활에 뱄는지 잠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컴퓨터 멀티 탭을 끄기도 한다.
그의 직업은 지역의 복지공동체 활동가다. 2005년 지역네트워크로 시작해 올해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한 마포희망연대에서 상근활동을 한다. 지역 어르신 돌봄과 결연, 청소년 멘토 활동 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활동을 한다.
그에게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나누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돈이나 사회적 관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품고 있다.
성미산 마을에 터를 잡아 성미산을 지키고 도시공동체를 만들고 차두레에 참여하여 차를 나눠 타고,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텃밭상자를 나누고…. 모두가 그에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글,사진 우미숙(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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