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디자인수도의 지위를 얻은 서울의 2010년도 저물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디자인서울은 처음의 진통을 뒤로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다음을 고민하는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2010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올해는 단연 디자인으로 떠들석한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2010년 서울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디자인도시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사업들이 빠르게는 2007년부터 시작되어서 올해 완공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디자인거리 사업, 도심재개발사업, 녹지축 조성사업, 문화창작공간 조성, 디자인올림픽 등등 디자인과 관련된 수많은 행사들이 열렸습니다.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에 대해서 그 옳고 그름을 논하면서 디자인이슈가 신문 방송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6.2 지방선거와 맞물리면서 디자인은 전시행정의 표본이 되기도 했다가, 우리나라의 미래먹거리 산업을 이끌 차세대 동력이 되어주기도 했지요.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영역에서, 또 수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디자인이 올바르게 진행 되었는지 아닌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나누고,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 입니다.
▲ (작년 디자인의 해가 이대로 저무나 싶더니,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듯한 사건이 벌어졌지요. 12월 12일 플로팅아일랜드 화재)
한편으로는 서울시의 디자인 문제의 의견들이 더 활기차게 이야기 될 수 있었던 것은 한 창작집단의 프로젝트 덕분이었는데요,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에 딴지를 걸며 등장한 디자인 그룹이 또 다른 의미의 "디자인 서울"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 이름 하여 FF 그룹인데요. FF그룹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더불어 심리학, 경제, 영상, 사회학등을 전공한 사람들끼리 만든 창작 집단이라고 합니다. 2010년 초 무렵부터 서울에는 서울의 시정정책을 홍보하는 서울시 포스터가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포스터들은 서울의 복지행정 프로그램을 홍보하기도 하고, 다산콜센터, 서울시가 만든 공원등 다양한 정책등을 홍보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스터에서 사용한 모델들은 한결 같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서울이 좋아요." 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이 디자인으로 달라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달라진 디자인을 결국 이용하는 것은 서울시민의 몫이지요. 그 디자인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온전히 시민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이 좋을 수도 있고 서울이 싫을 수도 있고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시민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몫까지 디자인된 포스터가 대신 느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내가 느낄 부분까지 디자인 된 서울이 대신 느껴주고 있는거지? 진짜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저 부분 위에 붙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 FF의 인터뷰 중
FF 그룹은 2010년도 4월 부터 시민들의 서울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하고, 그것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포스터 위에 붙이는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아래 영상은 FF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수집하기 위해서 이 작업이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 되는지 보여주고 소개하는 프로모션 영상입니다.
그들은 시민들의 의견을 트위터 (@ilikeseoul), 미투데이 (ilikeseoul), 그들이 만든 홈페이지 (ilikeseoul.org) 를 통해서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모여진 350여개의 창의적인 문구는 스티커로 다시 제작되어 서울시 포스터가 있는 공간에 붙여지기 시작합니다.
FF는 시민들이 보내준 의견에 0000001번 부터 고유의 숫자태그를 달고, 그 시민의 의견이 서울시의 어떤 공간에 부착되었는지, 보내준 시민에게 피드백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고 GPS가 장착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바로 구글 picas 웹에 올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위치정보 태그가 붙은 스티커 사진은 지도 위에서 자신이 어디서 찍혔는지를 드러냈죠.
서울시 지도가 스티커가 붙은 태그로 점령되기 시작 했습니다. 하루하루 시민들의 의견도 늘어났고, 그에 따라 스티커도 붙여지기 시작했지요. 적극적으로 본인의 스티커를 어떤 위치에 붙여달라는 시민들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내 스티커는 종로구 종로역 앞에 붙여주세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시민들이 보내준 위트있고 기발한 문구들을 담은 스티커는 아래의 사이트에서 직접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casaweb.google.com/lh/albumMap?uname=ilikeseoulff&aid=5464106466386890625#map)
지하철안과 승강장안에 붙어있는 포스터 뿐만 아니라 그들은 버스에 붙어있는 포스터에도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버스가 위치한 차고지를 찾아서 그들은 특정한 날 몇월 몇일날 차고지를 습격(?) 하겠다는 귀여운 선전포고를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공지를 한 그 날이 되자 십여명의 해치맨들은 차고지에 집결한 버스 위에 스티커를 붙이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그 과정을 전부 인터넷으로 생중계 했었지요. 아래 영상은 차고지를 습격하던 날 올라온 인터넷생중계 버젼의 영상 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민들과 서로 소통하며 스티커작업을 진행하던 해치맨들에게도 낭보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서울시 지방경찰청에서 날라온 "소환장" 덕분인데요. 소환장이 날라와서 경찰청에 출두하던 전날 새벽, 그들이 운영하는 트위터에는 소환되러 가는 해치맨의 사진이 올라옵니다.
경찰조사를 받고, 조사가 계속되어 진행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들의 작업방향은 기존의 스티커 작업과는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바로 "닦아내는 그래피티"가 바로 그것인데요. 서울시에서 디자인 한 디자인 거리로 가서 그 곳의 길거리를 칫솔과 세제등을 이용해 닦아내면 생기는 이미지를 이용해 글씨를 새기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 이 작업은 아이러니에서 발생되는 재미가 있지요. 불법적으로 그래피티를 하나, 닦아내서 그래피티를 하나 이미지가 남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닦아내는 방법을 택할 때는 이 과정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는것 같지요. 닦아내는 것은 뭔가 긍정적인 행동인데 이걸 막는 거 자체가 모양새가 이상해집니다. 또 닦아내서 만든 글씨를 바로 없애고 싶으면 일부러 거리를 다시 지저분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주변의 배경들까지 아예 깨끗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또 이상해지는 거구요. 실제로 대학로에서 새겼던 글씨 같은 경우는, 몇일 뒤에 가보니 주변 바닥까지 다 깨끗이 청소하셨더라구요." - FF 인터뷰 중에서 발췌
그들은 그 이후에도 이렇게 닦아내는 방식의 그래피티를 지속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 그들의 애교섞인 창의적 활동이 경찰에 제재를 받은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서울시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서울시측이 경찰청 쪽에 항의서를 보내면서 경찰 수사는 마무리 되게 됩니다. 사람들은 시민들이 재밌게 즐겼던 하나의 창의적인 디자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직된 서울이 디자인서울로서 자격이 있느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왜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서울시는 신중히 생각해 보고, 이번 일에서 보듯 시민의 일원인 학생들의 풍자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무슨 디자인 수도 운운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발췌.
FF 그룹은 그 이후에도 "해치버스터" 라는 휴대용 빔프로젝터 기구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보내준 트위터 문구를 벽에 쏘고 다니기도 하고,
빔에서 나오는 부분을 솔로 닦아내는 방식으로 한강 변에 글씨를 새기기도 하고,
시민들이 보내준 문구를 헬륨풍선에 띄워서 광화문 광장 한복판의 세종대왕상 옆에 띄우기도 했습니다.
"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은 문제가 많지요. 저희는 세종대왕은 존경하지만 세종대왕상은 싫어요. (웃음) 마치 지금은 문화의 시대야, 이렇게 문화적 아이콘 세종대왕도 세우고 어때 우리가 하는 일 존경심 가질 만 하지? 이러면서 말을 걸고 있잖아요?.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보여주고자 세웠던 60년대 이순신 동상처럼. (웃음) 광화문 광장은 말 그대로의 광장은 아니죠. 아무도 이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또 그로 인해서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뭔가 만들어가고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모이는 공간이야말로 광장인데 광화문광장은 사실상 그게 불가능하지요. 헬륨풍선 프로젝트 자체가 그것을 어찌보면 실험해 본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상 헬륨풍선을 가지고 그 광장안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합법적인 행동이거든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가로, 세로 2m 가 넘는 헬륨풍선은 설치하기 위해서는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허점이 있는데 설치를 해야지만 허가제 거든요. 들고 다니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게 없지요. 그 안에 어떤 문구를 적어넣든 한 사람이 들고 다니면 이건 1인이 들고 다니는 피켓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창의적인 행동일 수 있고 법적으로 제한이 없는 1인시위에 가까울 수 있어요. 하지만 경찰들에 의해서 여러번 제지를 당했지요. 그래도 불법이 아니니까, 밖으로 좇겨나면, 조금 있다가 다시 광장안으로 들고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웃음) 어떻게 보면 이 광장에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허용하는 자유로운 모든 행위가 용납이 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 본 셈인데요. (웃음) 그 만큼 실은 광장은 아니고 광장이라고 디자인적 선언을 하는 공간이죠. 난 디자인 된 광장이야. 이렇게 생긴 것이 바로 광장이야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결국은 진짜 광장은 아니죠. " - FF 인터뷰중에서 발췌
그들이 이렇게 디자인수도사업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해는 사실 2010년 보다 더 이전인 2007년 부터였다고 합니다. 디자인수도서울의 선포됨과 동시에 수많은 디자인사업들이 진행되는 과정들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해왔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 디자인 수도를 선정해준 ICSID (세계산업디자인협회) 의 보드멤버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그들의 인터뷰도 담았다고 합니다.그들이 2010년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를 고안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동안 문제점들을 기록해왔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많은 문제점들이 다양한 언론매체등을 통해 다뤄져 왔지만, FF 그룹의 목소리가 더욱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비판적인 목소리를 다양하고 기발한 매체로 섞어서 그들만의 방식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10년 디자인 수도의 해가 저물면서 FF의 시민들과 함께 "디자인 서울"을 만들어가던 프로젝트도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에 그들의 작업에 영감을 받은 다양한 창작활동가들의 또 다른 액티비즘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시끌벅적한 다른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소소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G20 기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서울에 등장한 '쥐벽서' 대학강사 사건도 이 FF 그룹의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그들의 디자인 실험이 단순히 재미만을 준 것은 아닌 모양이지요.
최근 FF는 서울시 지역내의 작은 커뮤니티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그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그들의 트위터 (@ilikeseoul) 홈페이지 (ilikeseoul.org) 에 올라올 새로운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재미있는 유머로 저항하는 FF 소식 이었습니다.
출처: 이 글의 모든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FF그룹에 있습니다. (ilikeseou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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