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콘텐츠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릅니다.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발음인 오덕후의 줄임말인데요, 최근에는 덕후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까지 생겼죠. 슬로워크와 UFOfactory에도 숨어있는 덕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덕력을 파헤쳐보았습니다.
다이어리만 12개, 들어는 봤나 일정 덕후
저는 다이어리 1개를 꾸준히 쓰기도 힘든데요, 무려 12개를 쓰는 일정 덕후가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솔루션본부 김다온 기획자입니다. 왜 일정 덕후가 되었는지 물어봤습니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덕후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늘어나는 다이어리를 보며 스스로 인정했다.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하루, 주, 월 단위로 계획하는 게 재밌고, 일정을 적는 순간 정리되는 기분이 좋아 점점 일정 덕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다이어리가 용도와 크기, 상황별로 하나둘씩 늘어났다. 집용/회사용/온라인용/가벼운 외출용/큰가방용/여행용/친구관계용 등.. 놀랍게도 가끔 밀릴 때가 있긴 하지만 모두 사용 중이다.
Q. 어떻게 잊지 않고 기록하나?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고자 하면 종류별로 꺼내게 된다. 저녁에는 주로 일기 용도의 다이어리를 쓰고, 아침에 일과 시작 전에 전체적인 다이어리를 쓰고 할 일을 정리하고, 확인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스트레스 받을 때 다이어리를 작성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면 기분이 좋기 때문에 밀려도 오히려 기분 좋게 몰아서 작성한다.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일정을 잘 잊어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씩 공지를 해줄 수 있다. 다양한 일정 관리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어서 시간이 지난 후 추억용으로도 좋다. 생생하게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그때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가끔 증거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Q. 개인적으로 연초에 다이어리를 샀다가 항상 매번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데 끝까지 쓰는 비법이 있나?
예를 들어, 이 다이어리를 끝까지 쓰면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 행운이 찾아올 것이다` 같은 미션과 믿음 혹은 미신을 부여한다. 즉 각 다이어리별로 안 지키면 찜찜할만한 무언가를 정해둔다.
현재는 코딩 덕후, 진정한 덕업일치
일본연예인, 일본어, 만화, 애니, 일드, 코스프레, 코딩까지 진정한 덕업일치를 이룬 BM팀 강효진 개발자의 덕력을 파헤쳐봤습니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덕후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습관이나 성격에 따라서 오타쿠가 될 지 안 될지 결정된다고 본다. 어렸을 적부터 뭐 하나에 꽂히면 미친듯이 파는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 영재반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 때 수학문제 푸는 것에 빠져서 겨울방학동안 수학문제집을 8권 정도 풀었다.
지금도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집요하게 파는 건 똑같다. 노래 하나에 꽂히면 열흘정도는 그 노래만 듣는다. 아이돌 팬질하면서 스트리밍 돌리면 딱인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능력을 썩히고 있다.
사실 덕력만 보면 꽤 여러가지 잡다한 것에 많이 빠졌다. 스스로 덕후라고 인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2003년부터다.
덕력 히스토리
2002 - 일본연예인, 일본어, 만화, 애니, 일드
2004 - 코스프레(만화를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하면서 총괄담당으로….)
2005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콩은 사랑입니다.
2006 ~ 2010 - 게임덕질, 덕후게임으로 유명한 마비노기. 특정 색 아이템을 접기 전까지 거의 다 모았…다;? 그깟 0, 1 데이터가 뭐라고;;
2012 ~ 현재 - 코딩덕질.. 스크립트 언어 좋아한다. 하지만 개발언어는 가리지 않는다능….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크게 본다면 일본어와 지금 하고 있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덕질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일본어는 좋아하는 일본 연예인의 예능 자막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2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일본 문화가 완전히 개방된 시절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새 앨범이 나오면 수입하는 업체에 예약하고 기다리거나, 이대에 있는 매장으로 직접가야하는 시스템이었다. 영상도 일본에 거주 중인 사람이 직접 녹화를 떠서 업로드하면 자막팀이 붙어서 2~3일 지나야 자막이 나왔다.
자막이 나와도 인코딩해서 카페나 팬페이지에 올라오는 기간이 3~4일 걸렸다. 영상은 떴는데 자막이 없으면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예능은 은어도 많이 쓰고, 말이 빠른 편이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드라마나 예능을 자막 없이 보는 데 큰 무리가 없다. 14년 전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을 위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최근엔 자막나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지금처럼 덕질하기 쾌적한 환경이었다면 일본어 공부를 안했을 거다.
개발은 일본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 연예인 정보 얻기가 정말 힘들었다. 잡지가 나와도 해석 올라오는데 한참 걸리고, 한국 아이돌 팬 커뮤니티처럼 활성화되어있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좀 뜨기 시작한데가 다음카페 <일본티비> 정도다.
당시엔 ARASHI를 좋아했는데, 아라시 팬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획일화된 다음카페 레이아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스스로 만들어야지 어쩔 수 있나. 제로보드와 php코드, html, 아주 허접한 수준이었던 자바스크립트를 공부해가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게 첫 웹개발 작품이었다.
일본어 공부하면서 잡지 구매하고, 업로드하고 정모도 개최하고 매주 정팅도 했다. 지금은 호스팅 서비스로 유명한 카페24가 그땐 채팅서비스로 꽤나 유명했는데, 주말마다 채팅으로 만나서 새로운 노래 이야기도 하고 드라마 이야기도 하면서 운영했다. 1년 반 동안 1~2달에 한 번씩 디자인 바꾸고 리뉴얼 하면서 개발에 익숙해졌다.
사실 대학 전공도 개발과는 무관해서 개발로 밥 먹고 사는 건 상상도 못했다. 대학 졸업반 때 들은 통계학 수업에서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개발에 급 흥미가 생겼고, 졸업하고 학원에서 배워서 현재 3년째 개발자로 살고 있다. 결국 덕질로 인해서 지금의 직업이 결정 된거니 진정한 덕업일치라고 생각한다.
화장품 처방해드립니다. 코스메틱 덕후!
화장품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코스메틱 덕후, 일명 코덕인데요, 슬로워크에도 있습니다. 코덕인 스티비팀 조은지 디자이너에게 요즘 꽂힌 아이템을 물어봤습니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학생 때부터 피부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화장을 하면 좀 나아보일까 하는 생각에 좋은 파운데이션을 찾아 백화점 이곳저곳을 돌았지만 아무리 비싼 파운데이션도 내 얼굴에 얹으면 별로였다. 아무리 비싸고 좋다고 소문난 제품도 그저그렇게 표현하는 내 피부의 문제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부터는 로드샵 제품부터 백화점 제품까지 골고루 피부에 테스트하고 있다. 호기심이 통장을 마르게 하는 것이다. 직접 사기보다는 매장에서 만지작거리다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쓰던 건 다 쓰자는 생각에 사지 않지만 그래도 꽤 양이 많다. 하지만 항상 쓰는 것은 한 두가지이고 대부분은 몇 번 쓰다 손이 잘 안 가는 것들이다.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진정한 코덕의 길로 가려면 아직 갈길이 멀기에(미니멀리스트로 살기를 원하기에...사고 싶은 화장품을 전부 사진 않는다) 특별히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은 없다. 그저 내 피부를 노화에서 한걸음이라도 멀어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화장품을 골라 달라며 화장품 처방을 요청한다면 척척 해낼 자신은 있다.
Q. 요즘 꽂힌 제품은 무엇인지?
스XXX 프로폴리스 앰플!, 아XX CPI크림
일단 저자극, 피부회복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제품을 고른다. 이 두 제품은 각각 그 역할에 아주 충실하다. 프로폴리스는 피부염같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쓰고 안 쓰고에 따라서 피부가 많이 차이난다. 마치 약산성 클렌징폼을 쓰다가 일반 비누나 클렌징폼을 쓰면 피부가 뒤집어지듯이… 세일도 자주하기 때문에 용량, 가격대비 훌륭한 편이다. CPI크림은 과민감 피부를 타겟팅해서 나온 제품이다. 이것도 바르고나면 피부가 편안한 느낌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피부가 진정된다는 장점이 있다.
Q. 평소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나?
기름이 폭발하는 느낌일 때는 씻고 크레오신같은 알콜 덩어리를 T존에 발라주는 편이고, 얼굴에 열이 많은데 무식하지만 미스트를 뿌리고 선풍기를 쐰다.
강수확률 20%는 비가 올까? 웨덕의 결론은?
기상청 예보를 얼마나 믿으시나요? 저는 2개의 앱으로 날씨를 참고하는데요, 무려 20개의 날씨앱을 사용하는 웨덕이 있습니다. 단어도 생소한 웨덕, 스티비팀 조성도 팀장의 덕력이 빛을 발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Q. 무슨 덕후인가?
웨덕이다. 내가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 지어줬다. '비'와 '구름'에 특히 관심이 많다.
Q. 왜 덕후가 되었는지?
고3 생활이 너무 갑갑해서 소소한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에 신문을 봤는데, 일기예보의 강수확률을 눈여겨 봤다. 그렇게 몇달 꾸준히 보면서 그날 비가 얼마나 왔는지 따져보니, 강수확률이 40%면 거의 대부분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비가 왔다. 강수확률이 30%면 우산이 없다고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비가 안 오는 경우도 많다. 강수확률이 20%면 거의 비가 안 온다고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강수확률을 눈여겨 봤던 것은 비맞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Q. 덕력이 빛을 발한 적이 있는지?
덕력 덕에 스마트폰에서 날씨앱 20개를 사용하고 있다. 이 중 Weather Underground는 여행 시 빛을 발한다. 스톡홀름에서 오후 5시 30분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구름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에서 #instagoorm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해시태그가 되었다.
슬로워크 덕후들의 덕력, 어떠셨나요?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무언가 하나에 깊이 몰두하면서 즐긴다는 사실이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데요, 저도 덕업일치를 꿈꾸며 저에게 숨어있는 덕후 기질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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