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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

성별 구분에 의문을 던지는 어린이 게임 앱





여러분은 어렸을 때, 주로 어떤 놀이를 즐겼나요? 남자라면 레고나 로봇, 미니카를, 여자라면 바비 인형이나 주방놀이, 고무줄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자아이는 주방 놀이에 1도 관심이 없을까?’

‘남자라고 고무줄을 끊는 놀이만 하고 싶었을까?’

‘여자애는 정말 로봇을 싫어할까?’


뭐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혹시 놀이에 대한 남녀의 구분이 너무 당연해서 우리가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말,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인 토이저러스(ToysRus)의 영국 사이트는 사회적 압력에 따라 사이트상의 카테고리에서 남/여아 구분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미국 등 대부분의 글로벌 사이트에는 여전히 남/여아의 필터가 존재합니다.

(왼쪽부터 토이저러스 영국, 한국, 미국 공식 사이트)



토이저러스 캠페인을 주도한 영국의 비영리조직 렛토이비토이(Let toys be toys)는 말합니다. “장난감은 흥미, 학습을 위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마음 편히 가장 흥미를 끄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합니다. 뭘 가지고 놀지 정해주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일,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방법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합니다. 장난감을 성별이 아닌, 주제와 기능으로만 분류하자는 겁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흡사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 세상입니다. 어린이, 심지어 유아에게까지 스마트폰은 궁극의 장난감입니다.* 스마트폰 게임 앱 회사인 토카보카와 타이니밥은 단순히 놀이에서 성별의 필터를 없애는 것 이상의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스마트폰 보유율은 초등 저학년이 25.5%, 고학년은 59.3%에 이릅니다. 스마트폰의 용도에 관해 묻자, 초등 저학년은 48%, 고학년은 37.6%가 ‘게임(1위)’에 할애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다른 용도(메신저, 웹툰 등)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헤어 디자인과 요리에도 중독될 수 있다?


토카보카(Tocaboca)는 스톡홀롬,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둔 게임 애플리케이션 회사입니다. 이 기업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게임 제작 원칙이 있습니다.





(1) 아이 관점에서 즐길 수 있는 열린 구조의 게임, (2) 광고나 추가 결제요청을 보이지 않는 게임, (3) 하늘색=남자, 분홍색=여자가 아닌 성별 중립적(gender neutral)인 게임을 만든다는 겁니다. 토카헤어살롱(Toca Hair Salon)이라는 대표적인 게임만 봐도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토카헤어살롱 게임 화면



토카헤어살롱은 내가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손님들의 머리를 디자인해주는 게임입니다. 왼쪽 이미지는 미용실에 찾아온 손님들인데요. 보시다시피 바비인형과 같은 스타일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동물과 사람을 합친 듯한 외모도 보이고, 목소리를 들어도 성별을 분간하기 어려운 예도 있습니다.


어쨌든, 손님 중 한 분을 택해서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디자인하는 건 100% 내 자유입니다. 하단에 보이는 바를 옆으로 넘기면 빗이나 가위뿐만 아니라 드라이기, 바리깡, 샴푸와 수건, 각종 염색약, 머리핀 등 다양한 헤어 디자인 툴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 제가 해도 정말 재미있다는 겁니다. (...)





나무를 컨셉으로 컷과 염색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떤가요?



토카키친2(Toca Kitchen 2)라는 게임도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야말로 ‘하고 싶은 대로' 요리를 해볼 수 있습니다. 먹지 못할 것 같은 음식도 괜찮습니다. 게임이니까요.




소시지를 썰 수도, 튀길 수도, 끓이고 구울 수도, 심지어 갈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헤어살롱과 마찬가지로 요리를 해 줄 캐릭터를 선택하면 왼쪽에는 식재료가, 오른쪽에는 조리 도구들이 준비됩니다. 이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합의 요리가 가능합니다. 날새우 쥬스도 만들 수 있고 잘게 썬 토마토 튀김을 대령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죄 없는 캐릭터는 호불호를 표현할 줄 알고, 안 되겠다 싶은 음식은 아예 먹어주지도 않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도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이런 게임이 인기가 좋냐고요?





10대, 20대, 40대도... 어쩔 줄 몰라하지만 어쨌든 모두들 좋아하네요.



한창 게임에 빠져있다 보면 나와 함께하는 캐릭터가 얼마나 남자답고 여성스러운지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게 됩니다. 머리를 디자인하고 요리하는 일이 얼마나 남성 또는 여성스러운지도요. 토카보카가 의도한 바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로봇 만들기


앞서 소개한 두 게임이 기존에 여성적인 놀이로 ‘분류'되었던 거라면, 브루클린에 위치한 타이니밥(Tinybop)의 게임들은 그 반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의 시각적 자극은 조금 더 도전적인데요.



로봇치고는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이미지 출처).



타이니밥의 로봇 공장은 몇 가지 과정을 거쳐서 무려 수천 가지의 독특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앱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외골격, 다리, 뇌, 눈, 날개, 촉수, 발, 자석 등 수많은 요소를 자유롭게 장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로봇 소리를 직접 녹음할 수도 있고, 위 이미지처럼 로봇 컬렉션을 만들어 둘 수도 있습니다. 로봇의 움직임은 물리 원칙을 반영하여 지극히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포토샵 팔레트 못지않은 색 조합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완성한 로봇이 걷는지, 나는지, 충돌하는지, 불에 타는지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로봇 공장의 인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애플의 2015 앱스토어 베스트앱의 영예를 안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쾌거가 단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게임의 첫 버전에 등장한 로봇은 현재 모습보다 훨씬 ‘기성 로봇' 같았습니다.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 모두 로봇을 ‘그(he)’로 표현했습니다. 타이니밥의 대표 라울 쿠티에레스(Raul Gutierrez)은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캐릭터 드로잉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심미적인 부분, 색상 구성 등을 업그레이드한 다음부터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로봇을 ‘그녀(she)’라고도 부르기 시작하며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별에 대한 초점을 과감하게 버린 게임 기업들은 단순히 ‘다양성 인정'이나 ‘인권의식 신장’을 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헤어살롱, 로봇 공장과 같은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수익성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남자아이들만 할 만한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두 배 이상의 수익성을 안겨주게 될 테니까요.


남녀평등, 페미니즘 이슈 등 젠더(gender)에 관한 이슈가 뜨거운 만큼,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움직임도 뜨거운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어떤 부분에서는 남녀를 가르는 일 자체가 아예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별히 아이들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고, 건강하고 관대한 시민이 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는 말입니다. 게임이나 놀이처럼요. 마지막으로 1981년에 나온 레고의 한 광고를 보여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레고 유니버설 세트는 아이들이 굉장히 중요한 발견을 하도록 돕습니다: 바로 그들 자신 말입니다.’




by 순록 발자국




참고

어린이 청소년 휴대폰 보유 및 이용행태 분석(2015), 김윤화, ICT통계분석센터(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