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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또 다르게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

슬로워크 디지털아카이브(DA) 사업부의 실험, ‘새-역사의 가능성'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이 처음 돌아다닐 때, 정말 심란했어요. 어느 대학 축제에서 이과생이 문과생을 조롱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싶기도 했고요. 기술이 발달하고 그만큼 시민들의 생활과 편의도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지만, 세상은 또다른 거대한 틀 안에서 획일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인문학은 그때마다 삶의 다양성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드러내며 어떤 틀을 깨부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고요. 물론 제가 문과생이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죠.

 

그런 와중에 슬로워크에서 처음으로 인문학 강연을, 그것도 ‘디지털아카이브(DA) 사업부’에서 주도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니. 여러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벌써 3회차 강연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4회차 강연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디지털아카이브 사업부 대표 김명직, 기획자 최지은, 그리고 프로젝트를 가까이에서 도와준 연구자 소준철 님과 함께했습니다.


슬로워크의 첫 인문학 강연, ‘새-역사의 가능성’은 지금 이 사회에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연구주제와 새로운 시도를 수면 위에 끌어올리는 자리입니다. 특히 시즌1은 기존의 분과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 방법을 통한 여러 가능성을 탐지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식민지 경험, 양극화, 소수자, 여기에 연루된 먹먹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기죽지 않고 연구하는 이들을 모십니다. 새-역사의 가능성은 실험 중인 새-연구자들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과 질문을 공유하는 자리이고자 합니다.


 

새-역사의 가능성을 시작하다

 

(왼쪽부터 누들, 김명직, 소준철, 최지은)

누들(이하 ‘누’) 여러분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해주세요.

김명직(이하 ‘김') 안녕하세요. 슬로워크 디지털아카이브(DA) 사업부 대표를 맡고 있는 김명직입니다. 

최지은(이하 ‘최') 반갑습니다. 같은 사업부에서 기획과 PM, 콘텐츠 등의 일을 하고 있는 기획자 최지은입니다.

소준철(이하 ‘소’) 안녕하세요. 저는 슬로워크 구성원은 아니고요. 서울의 근현대사, 소수자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자입니다. 새-역사의 가능성 강연에서는 강연의 전체적인 내용을 구성하고, 강연자 섭외, 내부 디렉팅 등의 역할을 맡고 있어요. 

누 준철님은 어떻게 DA 사업부와 인연이 되신 거예요?

 2017년 서울기록원 프로젝트에서 리서치 가이드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하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인연을 이어오다가 DA 사업부에서 이번 새-역사의 가능성 강연을 준비하면서 저를 디렉터로 섭외를 하신 거고요.

 

 강연 기획을 준철님이 먼저 한 게 아니라, DA 사업부에서 한 게 인상적인데요. 사실 슬로워크에서 인문학 강연을 한다고 했을 때 외부에서는 “슬로워크에서 갑자기 웬 인문학 강연을 해?”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거든요. 우리는 주요 사업모델로 디지털과 디자인 솔루션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슬로워크 조직개편을 하면서 우리 안에 디지털아카이브를 주제로 한 솔루션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고, DA 사업부도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인데요. 아카이브의 자료들은 관련분야 업무 경험이나 배경지식이 있어야 검색과 이해가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보통 사람들은 사실 접근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아카이브를 누가 주로 사용하는지 보니까 대부분 연구자들이었어요. 연구를 하려면 언제 무슨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에 관련된 자료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하니까요. 물론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일종의 연구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먼저 연구자와 디지털아카이브를 연결하는 접점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구자인 준철님에게 연락을 드렸던 거죠.

 실제로 우리나라는 연구자들이 활용할 만한 체계적인 아카이브가 드물어요. 주로 이용하는 국내의 기관 아카이브는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및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가기록원 등이 있는데, 아카이브의 역사가 짧아 아직은 이용 환경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연구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렵고요. 그래서 미국 NARA, 영국 TNA 등의 디지털아카이브를 보거나 직접 자료를 모아 아카이브를 구축하기도 해요. 그런데 연구자들은 대부분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전문가지, 아카이브 구축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자료를 모으고 쌓는 정도에서 그쳐요. DA 사업부에서 연구자들을 만나서 이들의 현실적인 수요와 이해를 파악하면 더 효율적인 솔루션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생각해낸 거고요. 

 연구자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연구자는 강연을 하는 연사이기도 하지만, 강연을 들으러 오는 청중으로서의 연구자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강연의 주제도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굉장히 구체적이면서 매니악한, 진짜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더 끈끈하게 담론을 형성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잡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신기하게도 2회차 강연자가 1회차 강연에 오거나, 3회차 강연자가 2회차 강연에 오기도 했어요. 슬로워크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연구주제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든 이렇게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거예요.

(3회차 강연에 찾아온 2회차 강연자 산토쉬 란전)

아카이브로 대동단결


 강연에 나선 연구자들도 슬로워크는 대체 뭐 하는 회사인데 왜 이런 강연을 여는 걸까 궁금했을 것 같아요. 내가 왜 거기서 강연을 해야 하지? 싶은 느낌이요.

 맞아요(하하). 강연자 섭외를 위해서 설명하는 시간이 꽤 길었어요. 강연자들은 이 강연이 슬로워크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건지 제일 궁금해했어요. 아카이브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연구자의 경험을 취득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게 핵심이었어요. 또 이번 강연에서 선보였던 네 가지 주제가 나름 최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것이었거든요. 자료를 통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연구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 연구로 또 다른 아카이브를 쌓아간다는 것 자체가 일맥상통하는 거였죠.

 연구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나면 이걸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하잖아요. 학계에 먼저 발표를 하고, 그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것이 보통의 순서라고 하더라고요. 학계에서 이 연구가 유명해지고 대세가 되면 나중에 대중 강연까지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 순서를 바꿔버린 거예요. 강연자 입장에서는 학계에서 아직 인정받은 것도 아닌데 왜 슬로워크는 우리를 대중 앞에 세워주려고 하는 건지 궁금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떨리고 걱정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번 강연 제목에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게 이런 이유에서 이기도 해요. 강연자 역시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 가늠해보기도 하고요. 2회 강연자였던 산토쉬 란전은 본인의 연구를 한국에서 한국어로 발표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한국에서 인도가 소비되는 방식이 힌두교 같은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까 비슷한 주제의 교양강의 수준으로 대중 앞에 설 기회가 있었지, 한국과 인도의 관계에 대해 소개한 적은 거의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무되었고요.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한편으로는 대중강연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까 저랑 같이 리허설도 하고 그랬어요. 학계에서 쓰는 단어와 대중에게 쓰는 단어가 분명히 달라야 하니까요. 그만큼 열정적이었고 준비도 대단했어요. 란전 뿐만 아니라 다른 강연자분들에게도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고 또 청중 반응도 좋아서 정말 만족해했고요.

(1회차 강연자인 조동원 박사)

 청중 반응만큼이나 강연자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만족하셨다고 하니까 다행이었겠어요.

 강연 마무리 즈음에 질문과 답변을 하는 시간이 있어요. 그때 받았던 질문을 강연자분들에게 모아서 보내드리거든요. 그걸 보면서 강연자들은 “아 일반 대중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런 걸 궁금해 하는구나” 하면서 새롭게 인사이트를 얻어가요. 

 의외로 디테일한 포인트에 감동하시더라고요. 멋지게 사진 찍힌거.

 아카이브를 만드는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신기해해요. 디지털아카이브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걸 만드는 사람과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또 개발을 하는 회사에서 이런 강연을 준비하고 또 듣기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거죠. 마치 문과와 이과라는 큰 간극을 넘어서 아카이브로 대동단결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4회에 걸친 강연 주제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청계천 수리기술자, 식민지 조선과 인도, 강남, 한센병. 이렇게 크게 나뉘어있는데, 이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영 다른 영역인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가 흔히 ‘역사’라고 알고 있는 건 경제사, 정치사예요. 그래서 아카이브에서 주로 다루는 행정자료도 어떤 정치상황, 경제상황을 입증하는 데 쓰이고요. 공적 기록만 남죠. 그런데 이것과 좀 다른 결로 실제로 그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사,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생활사, 또 기술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기술사, 도시라는 공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도시계획사 등 또 다른 역사 연구의 스펙트럼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주류라고 하는 정치사나 경제사가 아니라 다양한 역사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역사 연구들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선정한 네 가지 주제는 각 분야에서 요새 도드라진 연구를 고른 거예요. 기술연구에서는 청계천 세운상가의 기술자 연구, 소수자 연구에서는 한센인 연구, 연구 방법 측면에서 있는 자료를 가지고 연구하던 기존 연구와는 완전히 다르게 자료를 직접 만들면서 연구하는 심상지리학. 그런 방식으로 여러 면에서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주제예요. 

 우리 입장에서는 이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됐어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아카이브 역시 웹사이트의 한 종류가 아닌가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강연을 준비하면서 연구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해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것들이 있더라고요. 디지털아카이브의 속성은 쌓아놓은 자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여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가 만든 솔루션이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소준철 연구원과 3회차 강연자인 이동헌 선생님)

우리 잘하고 있죠?


 DA 사업부에서 이런 행사는 처음 준비해 보신 거죠? 여러모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네 처음이에요. 부담이 없는 건 아닌데 나름대로 재밌어요. 주제만 보면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듣다 보면 어디선가 내 인생과 겹치는 부분이 하나씩은 꼭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또 눈치를 채셨는진 모르겠는데, 매번 플레이리스트도 신경 써서 준비하고 있어요. 1회에는 플레이리스트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 같은 노래를 넣기도 하고, 2회는 인도와 관련한 노래, 3회에는 노랫말에 강남의 지명이 들어가는 걸 다 찾았고요. 1930년대 노래부터 힙합까지. 이런 디테일을 모두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우리가 말하지 않더라도 온 사람들 중 누군가 발견하면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되는 거죠.

 돌발상황은 없었어요? 

 가장 큰 돌발상황은 앞에 프레젠터 연결이 끊겼던 거. 그게 제일 곤란해요. 

 강연 시간이 저녁이라서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2회 강연자였던 산토쉬 란전이 비건이어서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식사를 야채김밥으로 준비를 했었어요. 그런데 김밥 안에 게맛살이 들어있어서 드실 수가 없는 거예요. 란전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밥을 먹고 와서 괜찮다고 했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선 정말 당황했죠. 뒤풀이 때라도 준비한 음식을 드셨으면 해서 부랴부랴 샐러드를 사 오고 그랬어요. 매번 조마조마 하지만 임기응변과 센스 덕분에 대체로 별탈 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답니다.

 

 강연이 기획한 의도대로 흘러간 것도 있을 거고 또 아니기도 할텐데, 깨닫거나 배운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사실 그냥 고객을 유치해야겠다는 사업적인 의도로만 생각하면 방향이 완전 달라야 할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얼마의 예산으로는 어떤 아카이브를 만들 수 있다거나 업종별로 어떤 아카이브를 만들면 좋다거나 하는 정말 실무에 가까운 내용으로요. 그런 걸 한다면 강연과는 완전 별개로 다른 세미나를 만들어야 하고요. 

 이런 강연은 슬로워크에서도 또 저희 사업부에서도 처음 시작하는 거라서 뭔가를 판단한다는 게 섣부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모든 게 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볼 수는 없는 거니까요. 강연을 준비했던 이유도 당장 강연이 끝나고 우리가 어떤 계약을 성사시키거나 하는 사업적인 성과를 얻는 것보다는, 사업의 물꼬를 트는 정도로 생각했고요. 실제로 학회에서 슬로워크라는 디지털아카이브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디지털아카이브'라는 방식으로 정보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것부터가 큰 수확이라고 봐요. 회를 거듭할수록 신청자도 늘고 입소문도 조금씩 나고 있어요. 저희가 연구자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강연을 듣는 청중들도 서로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얻어가시는 것 같아요. 첫 회에는 개인적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2회차부터는 어떤 단체 소속으로 여러 명이 같이 오거나 하시더라고요. 슬로워크와 관계된 분들이 대부분 소셜섹터에 있어서, 각자의 일과 강연 주제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고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누 시즌1에 이어서 시즌2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일정은 미정이지만, 하반기에는 시즌1에서 다루고 싶었지만 잠시 미뤄두었던 주제를 다루고 싶어요. 여성/젠더, 서울, 일상수집, 예술가 등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소개하고 싶고요.


새-역사의 가능성을 탐지하는 것의 의미


 지금까지 우리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그래서 이 강연, 그리고 디지털아카이브라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 1회차 강연이 끝나고 든 생각인데요. 삼성이나 LG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잖아요. 대기업에서 그런 걸 굳이 알리려고 하지도 않고요. '한국 최초의 세탁기'처럼 일종의 신화로 만드는 데 좀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이런 기술의 시작은 어디선가 흘러온 자재들을 수리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기술을 배우게 되고, 이런 식으로 복제하며 발전하게 된 것이거든요. 그게 절대 나쁜 것이 아니에요. 뭐든지 0에서 시작하는 건 없으니까요. 연구를 통해서만 이런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신화를 그냥 바라보는 것보다 이런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좀 더 솔직하게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우리가 이런 정보를 잘 쌓아서 정리해놓고 외부에 공개했을 때, 우리가 몰랐던 정보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기록으로 쌓을 수도 있고요. 그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사회에 큰 자산이 될 수도 있죠. 

 저는 아카이브가 결국 과정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전시를 하든 사이트를 구축하든지 간에 보통은 대표상품만 딱딱 보여주거든요. 결과 중심인 거죠. 우리가 아카이브에 좀 더 신경 쓰게 된다면 이제는 단순히 결과만 보여주기보다, 그 결과물이 생긴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사물 혹은 사건을 대하는 감각도 같이 달라지길 바라는 거고요.

최 아카이브에 보통 자료가 모이면 그 수가 백 개, 천 개가 있는 게 아니라 십만 개, 백만 개, 천만 개가 있으니까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원하는 자료를 찾는 것을 도와주는 자료를 또 만든대요. 그걸 전문용어로 파인딩애이즈(Finding Aids)라고 불러요. 검색도구라고 보통 번역하고요. 그 검색도구 자체가 하나의 자료이자 콘텐츠인 거예요. 예를 들어 누군가 ‘컴퓨터’에 대한 시작을 알고 싶다고 하면 뭐, 뭐를 찾아보라고 알려주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기존에는 마치 국정교과서처럼 딱 정돈된 하나의 내용으로만 콘텐츠를 만들어서 보여주잖아요. 자료를 찾는 방법을 안내해 주고 각자가 자기만의 관점으로 자료를 찾고 모으면서 직접 스토리를 만들고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아카이브의 역할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면 사람들의 생각도 사회도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워지지 않을까요? 이런 식의 접근을 꼭 연구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새-역사의 가능성 마지막 강연, 놓치지 말고 참여하러 가기!




인터뷰 및 정리 | 슬로워크 마케팅라이터 누들
사진 | 모멘트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