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am Slowalk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슬로워크 여성자유보장위원회, Pitch



(이미지 출처: UN여성기구)


2019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111주년을 맞습니다. 슬로워크에는 ‘피치(Pitch)’라는 이름의 여성자유보장위원회가 공식 위원회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슬로워크 구성원 중 여섯 명이 여기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2017년에 공식화되었으니 만 2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간 슬로워크의 공식 채널을 통해 드문드문 활동을 보인 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소개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어요. 기회가 없었거나,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닌 척, 어려움이 없었던 척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오는 세상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나 싶고요.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야 하고 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발 붙이고 서서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요. 갈 길이 바쁩니다. 시작은 더 어려웠고요. 하지만 그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지지하며 힘이 되어주는 동료와 응원을 보내주는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슬로워크 여성 구성원의 자유보장을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피치 위원 강혜진, 오수희, 뜰을 만나 ‘날 것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듬뿍 가지고요.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 걱정 마세요"



이번 여성의 날엔 이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우리의 몫을 해봅니다.




누들(이하 ‘누') 안녕하세요, 피치 여러분. 반가워요. 먼저 피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오수희(이하 ‘오') 슬로워크 여성자유보장위원회 피치는 슬로워크 내 성평등한 조직문화 구축, 성인지 감수성 증대,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공식 위원회입니다. “조직 내 여성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조직 외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어요. 2017년 3월에 자발적으로 조직되었고, 같은 해에 공식화되었습니다. 성희롱예방교육, 성희롱실태조사, 페미니즘 영화 상영회 등 조직문화 관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천천히 하고 있고, 간혹 조직 내 관련 정책에도 관여하고 있어요. Pitch는 ‘던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저희가 어떤 의견이나 안건, 이슈를 던지고 함께 논의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고요.


슬로워크에는 피치 이전에 ‘여성고충위원회’가 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혜진의 “여성고충위원이 돼 주세요"를 기폭제로 비슷한 성격의 위원회가 새로 만들어진 건데요. 그 글 자체가 흥미롭기도 했고, 도대체 무슨 배경에서 이런 게 나온 걸까 많이 궁금하더라고요.


강혜진(이하 ‘강') 2016년에 슬로워크 구성원이 30명을 넘게 됐어요. 근로자참여법에 따라 30인 이상의 사업장에는 노사협의회와 이에 따른 근로자 대표를 두어야 하는데, 이 역할로서 요청받은 게 고충처리위원이었죠. 자발적인 요구로 만들어진 위원회가 아니다 보니 여성의 고충을 들어주는 위원회인 건지, 모든 구성원의 고충을 들어주는 위원회이지만 그 구성원이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인 건지에 대해 서로 이해가 달랐어요.


뜰(이하 ‘뜰') 아마 당시에는 누구도 그게 뭔지 잘 몰랐을 거예요.


간단히 얘기하면 법을 따르기 위해 만들어놓은 임시기구의 느낌이었던 거죠. 누구의 잘못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위원회에 속하게 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책임이 생긴 거니까 비판의식이 생기게 되었어요.


혜진도 그런 비판의식에서 자발적으로 위원회를 재정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네요.


맞아요. 그 무렵에 여성 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고요. 저는 우리가 여성 구성원들을 지지하면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역량을 펼치고 회사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가까운 사람에게 “너 정말 강한 사람이야, 잘하고 있어" 같은 얘기를 지속해서 듣고 나서야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잖아?"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런 생각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동력이 된 것 같고요. 회사가 모든 구성원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갈등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런 일을 처음 겪다 보니 내부 상황은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을 수도 있겠어요. 실제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땐 조금 힘들었어요.(웃음) 성별을 가리지 않고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이 오고 갔거든요. 개인적으로 따로 의견을 보내준 분들도 있고요. “문제의식에 공감을 못 하겠다”라거나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분도 있었고 응원의 말과 함께 뭐든 돕고 싶다고 말한 분도 많았어요. 어쨌든 이걸 계기로 합류 의사를 밝힌 구성원이 모여서 위원회의 방향과 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죠.


합류한 분들의 당시 심정도 궁금해지는데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로는 슬로워크가 2017년에 블로그를 통해 조직 내 여성인권을 점검하고 몇 가지 약속을 내걸었는데, 제가 그 글을 같이 편집했거든요. 직접 작성한 건 아니었지만 일종의 책임감이 있었어요. 슬로워크가 이렇게 약속하겠다고 외부에 알렸는데, 제가 기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동시에 약속을 못 지키면 잘 해보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가 피치 전신인 여성고충위원회에 속해 있었는데요. (여성 구성원의 투표로 선출된 것이라) 나서서 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구성원이 저를 그 자리에 있도록 신뢰를 보내준 적이 있으니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자격이 없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합류를 고민하면서 걱정했던 게 몇 가지 있었는데요.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이해가 충분한가 하는 우려가 있었어요. 또 이 활동을 통해 조직에 대한 냉소만 생기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고 한 이유는 제가 그 글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또 당시에 개인적으로 회사 밖에서 페미니즘 스터디를 하고 있었는데, 이걸 계기로 슬로워크의 변화에 기대를 걸어보자는 마음도 있었죠. 사실 여러 걱정이 많았는데 “(피치)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이름도 ‘여성고충위원회’에서 ‘여성자유보장위원회’로 바뀌었어요. 아무래도 ‘자유'라는 게 큰 개념이어서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피치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일터에서의 자유를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비즈니스 기회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술자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때 불편한 경험을 하는 여성들이 많죠.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기회를 획득하고 싶은 성향의 사람이라도, 여자라서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경험들이 쌓이는 거예요.


비즈니스 상황에서 외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며칠 밤을 새워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후에 “아름다우시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맥이 빠지죠. 여성의 외모를 칭찬하는 게 매너라는 착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비즈니스 상황에서 외모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되면 말한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역량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방해하는 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를 다 초월하거나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좌절스럽죠. 이런 종류의 경험은 한 번 했을 때와 열 번 했을 때가 다르고, 또 한 번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크게 느끼느냐 작게 느끼느냐도 다르고요. 여성이라서 겪는 불편한 상황을 기피하게 될수록 일의 기회가 적어지니까, 일터에서 자유로운 상황은 아닌 거예요.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이나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 여성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심지어 피치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있을 텐데요.


초반에 풍파가 있었던 편이에요. 원래 슬로워크의 성격이 그런 건 아닌데, 피치가 생길 때가 슬로워크와 UFOfactory가 합병을 하던 시기라 안정되지 않은 내부 분위기가 있었고 그게 불안감을 증폭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그건 시기의 문제였던 거라고 생각해요.


뭐든 처음 시작하면 1기, 2기 같은 게 있잖아요. 초반에는 해야 하는 일이 많고 복잡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버린 것 같아요. 활동을 하면 할수록 회사가 갖춰야 하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되고 그 빈틈을 채워야 하는데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려다 보니까 그랬죠.


사업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할 때는 의견이 갈리더라도 우리의 목표를 생각하면서 합의를 할 수 있는데, 피치는 목표는 목표대로 있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 방향성, 지향성이 모두 다르잖아요. 주요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부 이슈도 다르고요. 회의를 할 때도 수렴하기가 어려웠던 경우가 많았어요. 회의를 한번 하면 이슈가 막 10개씩 나와요.


예를 들면 위원회를 시작하는 상황에서 슬로워크의 현 상황을 진단하는 것부터 서로 의견이 다 달라요. 한참 부족하다는 사람부터 우리 정도면 진짜 괜찮은 거라는 사람까지 있으니까요.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최근에는 좀 변하게 됐죠. HQ(슬로워크 사업운영본부)와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가이드(가칭)을 같이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처음엔 우리 안에서 다 소화하려고 했던 것을 이제는 협업하는 방향으로 바꿔봤어요. 그러면서 성과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또 어떤 큰 개념을 먼저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가까운 이슈부터 손에 잡히는 목표를 잡았어요. 지난해 있었던 옥토버페스트 워크숍에서 만들었던 ‘코스터’나 BIYN의 자료에서 차용한 ‘성평등하고 안전한 모임을 위한 체크리스트’가 그런 경우고요. 그러면서 이 활동이 우리가 할 수 있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맞아요. 코스터와 체크리스트 둘 다 진지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반감이 생기거나 하지 않더라고요. 실제 워크숍 현장에서 구성원 반응도 좋았고요. 제 주변에서는 그때 제가 찍었던 사진을 본인의 카카오톡 프로필로 쓰고 싶다는 분도 있었어요. 완곡하게 자신의 의지를 알릴 수 있어서 좋다면서요.


저희가 계속 머리를 싸매다가 너무 힘드니까 “우리 산책 좀 하자" 하는 심정으로 회사 바깥에서 비슷한 활동을 하는 분들을 만났어요. 저희 얘기를 하니까 그분들이 “그거 왜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못해요, 사람 고용해서 해야 돼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돌아와서 우리끼리 “원래 이렇게 힘든 거래요"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초반에 네트워킹이라도 잘 잡았으면 스트레스가 좀 덜했겠다 싶죠. ‘연대의 힘'이라는 말이 피부로 잘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만나면서 보니까 “아, 이게 연대라는 거구나" 확 느껴져요.


초반만 해도 우리가 내실도 못 다지는데 어떻게 네트워킹을 하나 했죠. 그런데 몇 번 만나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만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외부 자문을 해주셨던 분이 저에게 메일로 “그동안의 고생이 무의미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무의미하지 않다고 누군가가 확실하게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피치에서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정기 설문조사도 진행하고 결과를 공유하잖아요. 주된 목적은 구성원들이 젠더 이슈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보이는데, 맞나요?


정기 설문조사가 있기 전에 피치를 처음 만들면서 익명으로 고충접수를 받은 적이 있어요. 지금 바로 신고하라는 의미로 URL에 ‘rightnownow’가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막상 접수를 받고 보니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미 접수는 했는데 해결을 못 하니까 당연히 혼란스럽고 꽤 힘들었죠. 그래서 일단 조직 내 구성원이 겪고 있는 문제를 공유한다는 걸 일차적인 목표로 세우고 최대한 구체성이 없고 구성원에게 공유 가능한 수준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정기 설문조사를 만들었어요. 그걸 바탕으로 저희는 조직문화적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요. 사건의 처리는 HQ와 함께 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가이드(가칭)를 통해 진행하려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워크숍 때 만들었던 코스터도 1차 정기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거예요. 고충을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고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충을 접수했는데 같은 일을 또 겪게 된다면 더 절망적일 테니까요. 정기 설문조사 결과를 모아 사내 공식 행사인 타운홀에서 공유하고 있지만 바로 행동 교정으로 이어지기는 힘든 것 같아요. 정기 설문을 통해 접수된 고충 중에 '회식 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충'이 있었는데 워크숍을 앞두고 같은 고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게 피치 코스터였어요.


물론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고 좌충우돌하는 게 당연한데, 그런데도 쉽지 않은 길이라고 느껴지거든요. 본업이 있으니까 더더욱이요. 그래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힘든데 왜 하는 거예요?


마치 ‘퇴사를 왜 안 하는가’와 비슷하네요.(웃음)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안 하면 안 되니까요. 지금은 퇴사한 한 동료가 저희한테 “당신들은 이미 불타는 다리를 건넜다"고 한 적이 있어요. 다리는 이미 불탔고 저희는 돌아갈 수 없는 거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면 불편한 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걸 내버려 둘 수 없게 되거든요.


정말 그래요. 하는 게 아니라 못 그만둬요. 이걸 안 하면 계속 문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동료도 문제를 겪거나 목격할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에 맞서는 것밖에 없는데 그만둘 수 없죠.


조직 내 젠더 감수성이 개선되는 속도가 더디다고 하더라도 한번 나아지고 계속 그걸 유지할 누군가가 있다면 다시 그 전으로 갈 수는 없어요. 위원회에서 함께하는 멤버들에 대한 동맹관계랄까, 그런 감정도 있고요. 제가 어떤 이유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 사람이라고 안 그러겠나 싶은 거죠. 새로운 분들이 들어와서 더 잘할 수 있는데 제 기우일 수도 있고요.


동맹관계라는 게 은근 결정적이에요. 막 힘들어하다가도 피치 회의 때 동료들 얼굴을 보면 못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했지만 음료와 디저트가 바닥나도록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과 경험도 한몫할 것 같아요. 그게 피치의 존재 이유 혹은 의미이기도 할 수 있겠고요.


최근에 달라졌다고 제가 느꼈던 에피소드 중 하나가 슬로워크 단체사진 촬영 이슈였어요. 구성원 사진 촬영과 공개에 대한 논의는 사실 제가 갓 입사했을 때도 비슷하게 있었거든요. 그때도 마찬가지로 의견이 분분했고 별다른 진척이 없이 끝났거든요. 그래서 지난 10월 슬로워크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사내 워크숍 ‘옥토버페스트’에서 단체사진 촬영 건이 나왔을 때 반대 의견을 내면서도 사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빠르게 처리를 해주더라고요. 먼저 조치사항을 제안해주고 즉각적으로 해결되고요. 회사가 변하고 있다고 느꼈죠. 개인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내가 부족하더라도 이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까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든든함이랄까. 여성이슈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생긴 기분도 들고요. 피치를 하면서 공식적/비공식적으로 고충을 들어주고 개선할 점을 마련해가는 역할을 맡다 보니까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제가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됐어요.


저는 피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직 내부에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슬로워크의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피치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알 수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가 정기 설문조사 결과든 조직문화적 해결이든 어떤 안건을 계속 던졌을 때 구성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아차 싶은 순간이 있었던 걸 떠올리게 될 수도 있고요. 서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니까요. 적어도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 “이거 피치에서 나왔던 얘기랑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라도 준다면 좋은 거죠. 피치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비록 지난한 시행착오의 시간을 보냈지만 의미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피치를 하기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어느 정도의 감수성이 생긴 것 같기도 해요.


아무래도 많이 성장했죠. 피치 초기에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주의를 많이 뺏겼어요. 피치 내부에서도 그런 얘기만 했어요. 다른 조직도 아마 처음 1년은 이렇게 마음속에 있던 것을 쏟아내는 기간을 가질 것 같아요. 한번 와르르 쏟아내야 다음 일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지금은 당장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현상에 대한 비판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느낌이 확 드네요. 올해는 어떻게 가게 될까요?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별로 PM을 두는 시스템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대외협력, 설문조사 같은 카테고리를 나눠서 각자 역할을 맡고 상호 피드백을 하는 식이요. 올해는 한 해 목표를 세우더라도 전부 다 이룰 거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빈칸을 좀 만들어 놓고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지금 여성운동이 유독 활발한 시기이지 않나 싶은데요. 다른 조직에서 피치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또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말 만큼은 꼭 전해주고 싶다” 하는 게 있다면요.


절대 완벽할 수 없어요. 내부에서 끙끙대기보다는 다른 조직을 만나는 게 생각보다 큰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라는 책에 “성차별은 있거나 없을 뿐 덜한 건 없다"는 말이 있어요. 저는 그게 맞는 말 같아요. 그래서 나의 속도와 세상의 속도가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함께하는 동료도 정말 중요하고요.


“추상적인 선을 쫓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없애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런 방식으로 가는 게 지속가능한 방법이라고 봐요. 관점을 바꿔야겠다는 식으로 크게 접근하면 영원히 안 끝나요. 가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능하면 즐겁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 같기도 하네요.




111주년을 맞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Pitch에서 직접 제작한 코스터 5종의 이미지를 배포합니다(CC BY-NC-ND 4.0). 함께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고 믿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5종


*휴대폰 배경화면 이미지 5종

(클릭!)






인터뷰, 정리 | 슬로워크 마케팅 라이터 누들

블로그 이미지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

코스터 이미지 | 슬로워크 여성자유보장위원회 Pi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