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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Z세대가 협업하지 않을 거라는 건 편견이죠"

HBM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한재연과의 인터뷰

 

HBM 사회적협동조합은 '평범한 사람들이 팀으로 특별한 세상을 만든다'는 믿음으로 팀창업을 지원하고 육성합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 이듬해에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고, 누군가에게 고용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터를 주체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시도로 '협동조합'이란 카드를 꺼내든 것이죠. HBM 사회적협동조합(이하 HBM) 사무국장 한재연은 제25기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를 수료했습니다. 슬로워크는 그동안 슬로워크가 성장하기까지 받은 도움을 다시 누군가에게 베품으로써 비영리 생태계의 선순환 고리를 만든다는 취지로 모금전문가학교에 9년차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요.  25기 슬로워크 장학생으로 선정된 한재연 사무국장은 창업비즈니스스쿨 'LEINN 서울'의  발전기금 1억 원을 유치하기 위한 '앱솔루트 기빙클럽'을 기획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노동 방식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실험하는 HBM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어요.

 

"공동선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HBM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한재연)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HBM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한재연입니다. HBM에서는 서로 별명으로 부르는데, 제 별칭은 '꽃순'이에요.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은 봄이 오는 걸 알리기 위해서 겨울에 피는 꽃'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이 노랫말이 좋아서 '꽃'에 '순이'라는 친근한 호칭을 붙인 거예요. 

 

어떤 계기로 HBM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시게 됐나요? 

전 직장을 그만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취업 시장에 나왔다고 소문을 좀 냈죠(하하). 농담이고요. 

2020년 5월부터 HBM에 합류해서, 한 2년 정도 됐네요. 지역에서 청소년 사회적경제 교육을 재밌게 해볼 수 없을까 하고 찾다가 HBM에서 MTA(Mondragon Team Academy)란 방식으로 코칭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어요. MTA 방식은 학생들이 '팀프러너'*가 되어 직접 창업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선생님은 팀 코치가 되어, 학생이 기업가로 성장하는 교육법을 말해요. 

저는 팀 코치 양성과정에 참여하며 MTA의 미션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HBM으로 이직하게 됐어요. 그간 협동조합 지원 업무를 하면서 무언가에 목말랐었는데, MTA는 미션 중심으로 단단한 팀을 만들고 지역 기반의 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팀을 꾸리기 때문에, 이거라면 진짜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팀프러너(Teampreneur)란? 팀(team)과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의 합성어로 팀 구성원이 함께 학습하고 성장하며, 혁신적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MTA 방식을 채용하는 HBM이 더 궁금해지네요. 어떤 조직인지 알려주세요. 

HBM을 이해하려면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이 설립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HBM의 전신인 해피브릿지는 원래 주식회사였어요.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세워진 이듬해에 멀쩡한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화제가 됐었죠. 해피브릿지가 2013년 3월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했을 때,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았어요. 협동조합이 빈부격차,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문제에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죠. 2014년 2월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이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MOU를 체결해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를 설립했고, 두 조직이 긴밀히 연결되어 한국에 협동조합을 활성화하자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후 2019년에 HBM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다시 한번 조직을 변경했어요. 조직명 HBM은 Happy Bridge Mondragon의 약자로 HBM의 주요 상징이 모두 담겨 있죠. 



"고용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LEINN 서울 ‘레이너’들이 사회적경제박람회에 참여한 모습. 이미지 출처: HBM 사회적협동조합)

 

HBM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데 그중에 팀프러너를 육성하는 유럽 대학 과정 'LEINN'이 흥미로워 보여요. 

LEINN은 스페인 몬드라곤 대학 경영학부의 기업가적 리더십과 혁신을 배울 수 있는 국제 프로그램입니다. 공식 인증된 유럽 학사학위 과정이에요. 이 LEINN 과정을 한국으로 가져온 것이 'LEINN 서울'인데, 쉽게 말해 서울에 있는 몬드라곤 대학 지역 캠퍼스예요. 저희와 같이 전 세계에 16개의 로컬 랩이 있어 전 세계적 교류가 가능하죠. 

LEINN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팀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기업가인 '팀프러너', '레이너'라고 부릅니다. LEINN에서는 4년간 같은 과정을 밟는 팀프러너간 합을 이뤄 비즈니스를 일구고 매출 달성을 합니다. 이 부분이 기존 대학 커리큘럼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죠. 

 

보통 수능 점수로 들어가는 대학과 달라 보여요. 입학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LEINN에서는 돈을 좇는 사업이 아닌 자기의 노동 방식을 결정하고 그것이 개인의 미션에 맞는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입학 과정에서 지원서를 받고, 코치들과 미래의 레이너가 될 사람이 여러 번의 인터뷰로 만나죠. 지원서(학습계획서)에는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학습할 것인지, 학습 계획이 달성되었다는 것을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측정할 건지를 쓰도록 합니다.  

 

지원서만 놓고 합격, 불합격을 단번에 결정하기 어렵겠군요. 그렇다면 인터뷰에서는 어떤 것을 물어보시나요?

인터뷰마다 달라요. 우리는 개인의 미션을 우선으로 생각하니까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앞으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죠. 지원 시 제출했던 학습계획서를 바탕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학습 경험이 있었고,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물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다 보면 지원자가 '레이너가 되기에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겠다'라거나 '나와 안 맞는구나'를 자연스레 깨달으며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해요.

 

입학 과정을 거치며 자신을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이런 과정이 LEINN에 대한 선이해를 돕죠. 입학하면 한 기수가 하나의 '팀 컴퍼니'가 되어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은 팀으로 가기 때문에 협업에 대한 마인드셋이 중요해요.

Z세대를 많이 만나시겠네요. Z세대 하면 사실 협동, 협업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편견이 있는데, 사무국장님이 그동안 만난 Z세대는 어떤가요? 

Z세대라고 특별하지 않아요. 저는 세대를 넘어서, 호모 사피엔스라면 응당 누군가와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팀을 이루고, 누군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생존에 너무 기본적인 일이죠. 무슨 일을 하든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심지어 프리랜서로 일을 해도 파트너가 있고 소통하고 협업하니까요. 그래서 Z세대끼리의 협업을 위해서 특별한 장치를 두지는 않아요. 사실 이렇게 팀과 협업을 강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 개인의 행복이에요. 개인이 행복하지 않는데 함께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같이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고, 큰 의미가 없죠.

 

팀이 있기 전에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 좋은 포인트네요. 또 LEINN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함께 일하고 공동으로 배우는 게 무엇인지 진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에 LEINN 서울 2기로 15명이 들어왔어요. 이들이 여러 유닛을 구성해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죠. 올해 4개의 프로젝트가 있으면, 4개에서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고 수익금을 '팀 컴퍼니' 지갑에 모두 모아서 공유해요. 어떻게 나눠 가질지 기준은 레이너들이 정하죠. 일정 부분은 적립해서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쓰거나, 등록금 내기 어려운 레이너를 위해 돕기도 해요. 내년 1월에 러닝 저니(learning journey)로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요즘 레이너들이 열심히 수익을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수익을 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트레이닝 세션이에요. 업무 회의와 별개로 개인의 학습과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의 시간이에요. 서로의 프로젝트에 영감과 도움을 주죠. 레이너 개인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학습을 하고 있는지 나눠요. 이런 대화를 통해 다음에 우리는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며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찾기도 하고요. 

 

"평범한 사람들이 팀으로 특별한 세상을 만듭니다."

(모금전문가학교 수료식에서 모금 기획 결과보고 발표 중인 HBM 사무국장 한재연)

 

 

모금전문가학교는 어떤 계기로 다니게 됐나요? 

LEINN 서울이 보통의 대학처럼 캠퍼스가 있고 그 안에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기반 조성을 위한 대학발전기금이 필요합니다. 우선 유럽 대학교라 우리나라 대학교보다 등록금이 비싸고, 유럽 소재 학교라 국내 장학금과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학교 기반 조성뿐만 아니라 레이너들이 비즈니스를 추진할 때도 시드머니가 필요하고요. 그러다 우연히 HBM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혁신파크 내부 소통 채널에서 모금전문가학교 소식을 알게 됐어요. 안정적인 대학 운영과 비즈니스 투자를 위해서 후원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앞뒤 재지 않고 모금전문가학교를 등록했어요. 

 

저도 코로나 전에 16기 모금전문가학교를 다녔어요.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모금에 초점을 맞추거나 모금에서 강조하는 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더라고요. 

학교 선배를 만난 것 같군요(하하). 특별히 코로나라고 기존 커리큘럼과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아요. 온라인, 오프라인이라는 접근 방식이 조금 변할 수 있어도 기부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은 똑같으니까요. 성공적인 모금을 이끄는 열쇠는 기부자들이 모금 참여를 쉽게, 즐겁게,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이번 모금전문가학교 25기는 10명 정도 되고요. 비슷한 관심사와 주제를 가진 학생들이 조를 이뤄서 후원 상품을 개발하는 팀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우리 팀에서는 HBM 후원 모금을 설계하고 있어서 학교 과제와 원래 하려던 것을 일거양득 하고 있어요. 

 

아직 설계 중이지만 '앱솔루트 기빙클럽'을 살짝 미리 볼 수 있을까요? 

앱솔루트 기빙클럽은 33인의 기부클럽 회원을 유치해 2022년 5월까지 목표액 1억 원을 모금할 예정이에요. 모금액은 LEINN 서울 대학발전기금으로 쓰이며 내년 LEINN 서울 3기 장학금, 해외 러닝 저니 지원, 새 공간을 마련하는 데 쓸 계획입니다. 클럽에 가입하는 분들은 혁신 기업가들의 네트워크에 속해 사회적기업 창업가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고요. 고민하는 사회문제를 레이너들과 함께 해커톤 방식으로 풀어볼 수도 있고, 협업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레이너를 채용하는 기회로 연결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국내 유일무이 혁신가 클럽이 될 것이라 자부해요. 기빙클럽이 정식 설립되면 반갑게 소식 전해드릴게요. 

 

HBM의 내년 행보도 기대됩니다. 앞으로 HBM에서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HBM의 스토리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과정을 담은 팀프러너들의 이야기집도 발간했어요. 그동안 기업 간 사업이나 정부 지원 사업이 중심이었다면, 이제 우리만의 상품을 만들고 이를 법인과 개인 모두에게 알려서 외연을 확장하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 사무국에서는 우리만의 상품 라인을 짜고, 브랜딩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재연'이라는 개인에게 2022년은 어떨 것 같나요?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이런 얘기하기 그렇지만 저는 일이 좋아요. 바쁘게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게 제게 더 에너지를 주고요. 일로 얻는 성취감이 커요.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게 일을 즐기면서 지내겠죠? 내년에는 지역 기반의 팀 창업 사업에 참여하고 싶어서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무국장으로서 내년에 조금 더 유능해지고 싶기도 하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공동선 확장에 기여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일해 왔어요.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이 요즘 제게 큰 키워드예요. 협동조합은 결사체로서 조직이 갖는 특징이 있고, 단순히 돈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조합에서 만들어낸 상품, 서비스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아이템이잖아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돌봄'이 핵심 노동으로 떠올랐다고 생각해요. 의사도 필요하지만 간호사나 병원 청소를 하는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해진 걸 우리가 경험으로 알게 됐잖아요. 품위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이죠. 이렇게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데 필요하지만 많은 이가 하지 않는 것을 협동조합이 품어서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 이웃의 행복을 챙겨주면,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협동조합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보고 저 스스로 협동조합주의자라고 부르게 됐죠.
아무튼 저는 협동주의자입니다!

 

 

 

 

인터뷰, 정리 | 슬로워크 브랜드&콘텐츠라이터 찐쩐